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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5.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라는 작명을 보고 최근의 미스터리 작품들을 수록했을 거라 지레 짐작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기획 의도에 따르면 이 시리즈는 현재 미스터리 왕국이라고 할 만한 일본의 추리소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기원하고 발전해 왔는지 그 족적을 밟아보기 위한 것으로서, 아주 오래전 작품부터 싣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9세기에 태어난 작가들의 작품부터 시작한다.)
특히 시리즈 1권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선구자적 작가들이 서구의 추리소설을 번역한 글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오리지널 작품은 거의 없다. 다만 그중에서도 1권의 타이틀로 쓰인 작품인 <세 가닥의 머리카락>은 고풍스러운 문체와 평면적인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트릭을 푸는 과정이 논리적이고 흥미로운, 상당히 좋은 미스터리였다.
시리즈 5권 <어느 가문의 비극>에는 네 작가의 여섯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연>과 <어느 가문의 비극>이다.
<연>은 작품해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격풍은 아니고 사회파 추리소설에 가깝지만, 저자가 글을 너무 잘 써서 인상 깊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은 줄거리를 가지고 이렇게 흡입력 있게 글을 쓸려면 대체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가문의 비극>은 단연코 지금 출간되어도 좋은 반응을 얻을 만한 훌륭한 본격 추리소설 작품이다. 특히 트릭이 풀린 듯한 순간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비틀어 새로운 트릭을 등장시키는 대목에서 작가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탐정과 용의자들의 캐릭터도 생생하며, 무엇보다 고전 추리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이자 가장 흔한 레퍼토리인 '미치광이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었다는 점이 마니아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분명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