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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18. 2023

그날 밤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금메달 연기 (4)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겨울. 열한 살의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거실에 나와보니 아빠가 역시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빠, 뭐 봐?”

“올림픽. 니도 함 봐라. 누가 더 잘하는 것 같노?”

아빠가 가리킨 텔레비전 화면에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롱프로그램 경기가 한창이었다.


아니, 이렇게 예쁜 스포츠가 있었다니. 새하얀 빙판에 요정같이 예쁜 의상을 입고 신기하기 그지없는 기술을 선보이는 선수들을 보고 나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어떻게 저렇게 미끄러운 얼음판에서 점프했다가 무사히 착지하고, 멋진 자세를 선보일 수 있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홀린 듯이 아빠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금 연기를 펼치고 있는 선수는 미셸 콴이라는 이름으로, 아빠가 좋아하는 선수라고 했다. 콴은 연한 하늘색 탑 의상을 입고 느리고 서정적인 템포의 음악에 맞추어 우아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콴의 연기는 조금 지루하고 밋밋하게 느껴졌다.


“아빠, 그래서 저 사람하고 누가 대결하는데?”

“이제 나올 거다. 봐봐라.”

라이벌이라는 선수가 등장했다. 그 선수는 콴에 비해 키도 작고 왜소해, 꼭 어린애처럼 보였다(실제로도 어린애였다). 이름은 타라 리핀스키. 미국 사람이라면서 이름은 꼭 러시아 사람 같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리핀스키가 연기를 시작했다. 금발을 파란색 머리끈으로 묶고 역시 파란색 의상을 입은 그는 빠르게 빙판을 누비기 시작했다. 흰색과 파란색의 조합은 너무나 청량하고 상쾌했다.


그의 연기가 계속되면서, 나는 마치 요정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고난이도의 점프와 가벼운 스케이팅, 영롱하고 예쁜 음악, 시종일관 넘쳐 흐르는 발랄함과 명랑함. 리핀스키는 콴과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생기가 가득했으며 다양한 점프와 스핀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연기의 맨 끝에 선보인 화려한 시퀀스 점프와 자로 잰 듯한 대각선을 그리는 일루전 스핀을 보고 나는 대번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아빠, 나는 저 사람! 저 사람이 훨씬 잘해.”

나는 흥분해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경기를 끝낸 리핀스키의 기뻐하는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빠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글, 아빠 눈에는 아까 나왔던 콴이 더 잘한 것 같은데.”

나는 아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리핀스키가 훨씬 어렵고 멋있는 경기를 했다. 콴이라는 선수가 라이벌이라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과연 심판들도 나와 같이 평가할지 궁금해하며 점수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리핀스키의 승리였다.

“아빠! 맞잖아! 저 사람이 훨씬 잘했다니깐!”

환호에 찬 비명을 지르는 선수의 모습을 뒤로 하고 나는 아빠에게 돌아서서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상한데...”라고 중얼거렸다.


리핀스키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역만리 동양의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연기를 보고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스포츠의 팬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12년이 흐른 후, 그 여자아이의 나라에서 자신의 뒤를 잇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올 거라는 사실을.    




그날 밤 이후 내 머리 속에는 리핀스키의 환상적인 연기가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날의 요정 같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열심히 검색한 결과, 정말로 연기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은메달을 땄던 콴의 경기도 다시 보았다. 올림픽 뿐 아니라 두 선수의 중요 경기 영상도 다 찾아서 감상했다. 그렇게 인터넷의 바다에서 한참 피겨 영상을 찾아다니던 나는 그날부터 한 선수의 본격적인 팬이 되었다. 그는 바로 미셸 콴이었다.


알고 보니 콴은 올림픽 때 평소 기량을 십분의 일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계선수권, 미국선수권 등의 다른 주요 대회에서 수도 없이 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콴의 경기를 보면, 왜 그가 올림픽 금메달이 없음에도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출중한 기본기와 깔끔한 점프와 스핀,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스케이팅 등 기술적인 측면도 물론 좋았지만, 예술성에 있어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는 콴보다 상체 움직임이 아름답게 정돈된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비견될 만한 선수로는 옥사나 바이울이나 김연아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콴은 일단 빙판에서 서면 온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었다. 두 팔을 뻗는 것과 같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도 그가 하면 품위가 넘쳤고, 빙판을 가볍게 활주하기만 해도 우아함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에 비해 리핀스키는 올림픽 때 본인 인생 최고의 경기를 한 것이었다. 물론 그 역시 훌륭한 선수였다. 올림픽 직전의 세계선수권에서 콴을 제치고 우승한 이도 그였고, 유일하게 콴을 견제할 수 있는 선수도 그였다. 그리고 리핀스키는 콴보다 확실히 더 고난이도의 점프를 뛸 수 있었기에, 기술점에서 우위에 있었다.


다만 그의 연기는 콴에 비해 덜 성숙하고 깊이가 얕다는 평을 받았다. 알고 보니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그날의 롱프로그램은 그의 이미지에 맞춘 탁월한 선곡과 안무로 인해 표현력의 단점이 최대한 가려진 것이었다.


리핀스키는 만15세에 금메달을 따는 영광을 누렸지만, 어린 나이에 고난이도의 점프를 지나치게 연습하면서 생긴 부상으로 인해 올림픽 이후 거의 바로 은퇴해야 했다. 그 여파로 이후 올림픽에 참가 가능한 연령이 만16세로 상향조정되어, 그는 영원한 최연소 여자싱글 금메달리스트로 남게 되었다(참고로 이 규정으로 인해 2006년에 만15세였던 김연아 선수는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반면 콴은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기 위해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갔다. 2002년 두 번째 올림픽에 참가하기 전 세계선수권에서 네 번이나 우승한 콴은 그야말로 피겨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누구도 넘보지 못할 커리어를 쌓고 여러 명연기들을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콴 최고의 경기들은 거의 다 그 시기에 나온 것들이다.

    

많은 피겨 팬들은 종합적으로 봤을 때 리핀스키보다는 콴이 더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98년의 올림픽 결과는 그 옳고 그름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렸다. 당시에도 그랬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유튜브에서 두 선수의 경기 영상 밑에서는 아직도 팬들이 댓글로 다투고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수많은 반대파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밤의 승자는 리핀스키라고 생각한다. 콴은 쇼트에서 1위를 차지한 후 금메달이 눈앞에 보이자 과하게 긴장한 탓인지, 지나치게 소심한 경기를 했다. 특유의 스피드와 과감함은 온데간데 없었고, 음악에 몰입하기는커녕 점프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피겨스케이팅과 같은 예술의 성격이 강한 스포츠에서 그런 소심함은 좋은 연기에 해가 된다.


그에 비해 리핀스키는 온몸에서 힘과 즐거움과 생기가 넘쳐나는 살아있는 연기를 했다. 심판들의 점수를 보아도 그는 가까스로 이기지 않았다. 여유롭게 이겼다.     




올림픽이 끝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콴은 리핀스키가 자신을 누르고 승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콴은 그토록 염원하던 금메달을 가져간 경쟁자를 바라보며 담담히, 그러나 온화하게 말했다.


“Tara, I lik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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