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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23. 2023

갑자기 새벽에 소녀 가수들

故죠앤 <순수>



2000년대 초반, 만 15세에 불과했던 보아의 큰 성공에 고무되어 여러 10대 가수들이 등장했다. 내 또래의 독자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웃기네>를 히트시켰던 故하늘, <여름 안에서>를 리메이크했던 서연, 보아와 같은 SM 소속이었던 다나, 그리고 죠앤 등의 소녀들을.


특히 죠앤은 작곡가 김형석의 프로듀싱 하에 좋은 곡과 준수한 가창력으로 상당히 유명했다. <순수> 말고도 <햇살 좋은 날>이나 <First Love> 같은 곡도 히트했다.


그러나 그는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많은 세월이 흐른 2012년에야 슈퍼스타K4에 참가하면서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죠앤의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은 소소하게 이슈가 되었지만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가 일반인으로 살던 중 2014년 1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앞서 언급한 하늘 역시 2013년 젊은 나이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어린 시절 자주 보던 또래 연예인들의 요절은 나에게도 꽤 충격이었다.


<순수>는 죠앤의 1집 앨범 후속곡으로, 당시 크게 히트 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인기가 많았던 정말 좋은 발라드다. 아직 너무나 앳된 목소리는 제목 그대로 노래의 순수함을 배가시킨다. 브릿지부터 시작되는 절정 구간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가수 태연이 오래 전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정식으로 리메이크 음원을 내줬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잘 어울린다.     


태연 버전의 <순수>




유리 <작지만 커다란 사랑>



    

앞서 언급한 가수들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소녀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았고 또 발군의 가창력을 자랑하던 유리라는 가수가 있었다. 유리는 색다른 경로로 데뷔했는데, PC통신 업체이던 천리안에서 주최한 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우승한 것이다. 바로 <작지만 커다란 사랑>이라는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지금 음원사이트나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앨범 버전과, 천리안 가요제 수상 당시의 버전이다. 후자는 지금 음원을 찾을 수 없어 그런 게 존재했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겠으나, 천리안 애용자였던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가요제 버전은 엄청난 고음역과 기교로 점철된, 앨범에 실린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버전이었다. 그만큼 브릿지도 있고 더 화려하고 듣기 좋았는데. 앨범 버전이 난이도를 낮춘 것이라서 조금 아쉽다.


아무튼 열여덟 살의 소녀가 썼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보아 <차마>

  


보아의 1집을 들어보면 뭐랄까, 정말 애기가 부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라 목소리가 너무 어리고 정직해서다. 사실 중2치고 이 정도면 노래를 잘하는 편 아닌가? 가창력의 미숙함보다 오히려 표현의 서투름이 더 잘 느껴져서, 그래서 귀엽기도 한 앨범이다.


언젠가 보아 본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건지조차 잘 몰랐다고. 그래서 더 풍성하게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이다.


그런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차마>는 은근히 내 또래들 사이에서 유명한 발라드였다. 아마도 그건 실제 보아처럼 어린 화자가 짝사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린 가사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들으면 바로 귀에 꽂히는 쉽고 고운 멜로디도 갖고 있으니, 90년대 스타일의 직관적인 선율을 듣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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