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내뱉은 말
육아를 할 때면 누구나 문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1. 나는 아이가 31개월이 될 때까지 가정보육을 했다. 그러나 내 성격에 가정보육이 너무 힘들어서, 이내 우울증이 왔다. 이럴 때 육아서를 보면, 36개월이 되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면 애착 형성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린 엄마는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도 한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도 나쁘고, 우울증 걸린 엄마가 가정보육하는 것도 나쁘면, 날더러 어쩌라고??
2. 육아서를 보면 아이의 요구에 엄마는 즉각 반응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의 눈빛만 봐도 뭐가 필요한지 알아챌 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즉각 반응했다. 그런데 아이가 말이 너무 늦어 상담을 받았더니, 이번엔 엄마가 너무 아이의 요구를 잘 충족시켜주니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단다. 날더러 어쩌라고??
3. 배변 훈련을 하면서 아이가 실수를 하면 절대 혼을 내지 말라고 육아서는 말한다. 그래서 실수해도 혼내지 않고 닦아 주고 씻겨 주었더니 아이가 변기에서 용변을 볼 생각을 안 했다. 안 되겠다 싶어 야단을 쳤더니 애가 변기에 쉬를 하기는커녕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야단을 안 쳐도 안 되고, 야단을 쳐도 안 되면 날더러 대체 어쩌라고?
이렇게 육아를 하면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다 보니, 너무너무 화가 났다.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데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슴 속에 억울함이 가득 찼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어느 육아서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1. 부모가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는 절대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큰다.
2. 육아에서는 ‘무엇을 더 해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더 안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육아의 진리라고, 답이 없는 육아에서 나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격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육아서 중에서 가장 육아의 본질을 잘 짚었다고 느껴지는 두 구절이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느 책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그 후로 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정답인지 공부하기보다는, 위의 진리에 따라서 육아에 관한 나만의 대원칙 몇 가지를 정했다.
1. 절대로 때리지 않는다.
2.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아이에게 사과한다.
3. 아이와 한 약속은 되도록 지킨다.
4. 사랑한다는 말과 스킨십을 아끼지 않는다.
5.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더라도 그 감정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화낼 때는 화도 내고 웃을 때는 웃으며 엄마로서의 직관과 본능에 따라 아이를 대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 ‘좋은 엄마’의 요건을 충족시키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육아서에서, 그리고 육아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좋은 엄마란 아이를 위해 오로지 희생만 하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존재 같다.
그래서 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나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자잘한 실수나 잘못된 선택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큰 틀에서 대원칙에 맞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견지에서 보면 글의 처음에 소개했던 문제 상황 1, 2, 3번은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가 아니라,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가 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시기의 차이는 있어도 결국에는 해결될 문제들이었던 것 같다. 물론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던 당시의 나를 지금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문제를 만든 게 내가 특별히 애를 잘못 키워서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앞으로도 나는 육아를 하면서 답이 없는 상황에 수도 없이 부닥칠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항상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단단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