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운영위원으로 지원한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 각종 위원회가 넘쳐나는 직장에서 관련 업무를 보조하고 있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선생님들을 도와드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운영위원회라는 것은 법적으로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조직이지만, 자진해서 위원을 하겠다는 학부모는 거의 없다. 그러면 어떻게든 사람을 배정해야 하는 담당자만 힘들게 된다. 나는 그 고충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선생님, 저.. 혹시 그 운영위원회 말인데요. 정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제가 해볼까 하는데요..”
순간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에 활짝 꽃이 피었다.
“네, 어머님! 하셔도 돼요! 우리 반은 다들 일하시고 해서 지원하는 분들이 없을 거에요!”
일은 나도 하지만. 일 년에 몇 번 조퇴하는 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난주 수요일, 첫 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나는 도넛을 조금 사들고 어린이집 문을 들어섰다.
안내받은 회의실은 회사의 으리으리한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교실 하나에 아이들이 사용하는 아담한 책상과 조그만 의자가 한가운데 모여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앙증맞은 의자가 나의 묵직함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나 이외에 각 반에서 어머니들이 한 분씩, 그리고 지역위원이 또 한 분 위촉되셨다. 호호호 웃으며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원장선생님이 운영위원장을 뽑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연히 나 아닌 누군가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무심히 내 앞의 주임선생님을 바라본 순간, 눈이 딱 마주쳤다.
아뿔싸.
“위원장은 수빈이 어머님이 맡아주시는 게 어떨까요. 수빈이가 가장 나이가 많기도 하니까요.”
어여쁘신 주임선생님은 너무나 조신한 목소리와 상냥한 미소로 나를 지목했다. 하아... 아까 열심히 서류를 보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회사 일 때문에 자주 참석할 수 없다며 도망치려 했지만, 원장선생님은 한번 잡힌 물고기를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다. 그래, 어차피 어린이집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일. 모두가 싫어하는 감투를 써주는 것도 선생님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일 터이다.
그렇게 나는 팔자에도 없는 운영위원‘장’이 되고 말았다. 학창 시절 반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말이다.
원장선생님은 위원장은 그냥 이름일 뿐 회의 주재나 운영은 모두 본인이 맡아서 할 테니 걱정말라고 하셨다. 그 말에 안심한 것도 잠시, 몇 분 지나지 않아 내게는 위원장의 권한을 강력하게 발휘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원장선생님의 진행이 너무 길고 지루했기 때문이다...
나는 원장선생님이 당연히 서류를 대충 훑듯이 읊고는 사인이나 받아갈 줄 알았다. 그게 회의의 국룰 아닌가. 난 어린이집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하리라 믿기에, 기꺼이 사인을 해드릴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원장선생님은 너무나 열정적으로 올해의 어린이집 운영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계셨다. 아이고오...
서서히 잠이 오기 시작했다. 교실 창문을 통해 내려앉는 햇살이 너무 포근하고 따스했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마주보고 앉은 주임선생님께 한심한 엄마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덕분에, 고개가 떨구어지는 사태만은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몽롱한 시간이 지난 후, 원장선생님이 혹시 건의사항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손을 번쩍 들려고 했다.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꺼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딱 하나 있습니다. 다음 번엔 이거보다 빨리 끝내주세요...’
결국 나 자신과 아이의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서, 혀끝까지 올라와 이빨을 간지럽히는 이 말을 꾹 참기로 했다. 근데 지금 생각하니 좀 후회된다. 말해볼 걸 그랬나?
옆 교실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불러 어린이집 문을 나서는데, 담임선생님이 다급하게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어머님! 여기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선생님이 내민 서류에는 삼단결재 네모칸의 가장 오른쪽에 ‘위원장’이라는 직함이 쓰여 있었다.
빈칸에 이름을 휘날려 쓰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요, 이걸로 됐어요. 위원장이든 뭐든 까짓것 하죠 뭐. 그게 보탬이 된다면요.
(육아 단상 1. 도무지 일년 내내 감기가 유행하지 않는 철이 있기나 할까요? 눈꼽 끼는 감기가 낫자마자 열감기에 걸린 아이입니다ㅠㅠ..)
(육아 단상 2. 어제 간만에 퇴근 후 아이와 열심히 상호작용하며 놀아주었더니, 아주 뿌듯합니다. 외동 엄마는 놀아주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