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의 팬은 아니었답니다
이 글은 타 플랫폼에 먼저 게시했던 것을 브런치로 옮겨온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6년. OO여자고등학교에서의 나의 마지막 해가 흘러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조용하고 내성적이었고, 타고난 고지식함 탓에 조그만 규칙 하나만 어겨도 큰일나는 줄 아는, 좋은 말로는 모범생이었고 나쁜 말로는 너드였던 그런 학생이었다.
자연히 그 나이 때에 흔히 있을 법한 친구들과의 재미있는 사건이나 에피소드도 많지 않지만, 가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작은 소동이 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면서 미소를 짓곤 한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화장실을 가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나는 그다지 요의가 없어 멀뚱히 앉아있다가도, 친구가 다가와 'OO야, 화장실 같이 갈래?' 라고 물어보면 흔쾌히 일어나고는 했다. 더욱이 그 친구가 평소에 친했던 아이가 아니었다면 뜻밖의 반가운 제의에 기분이 좋아져 더 신나게 따라갔다. 그만큼 우리 사이에 화장실을 같이 간다는 것은 우정의 상징이자 호감의 표현이었다.
그 날은 아마도 석식을 먹은 후의 휴식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화장실에 가고 싶어 친구를 불렀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몇몇 친구 중 한 명이었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세리(가명)라는 친구였던 듯 하다. 내가 화장실 칸에 들어가있는 동안 세리는 다들 그렇게 하듯 문 밖에서 기다려주었다.
볼일을 본 후 잠궜던 문을 열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손잡이를 잡고 몇 번을 돌려봤지만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잠금장치가 고장이 나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문을 잠궈버렸던 것이다. 당황한 나는 밖에 있는 세리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지만,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 않았다. 세리와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굳게 닫힌 채 그대로였다.
우리가 당황해하는 소리를 듣고 주위에서 삼삼오오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마침 우리 반은 화장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 같다. 복도에서 놀던 친구들도 들어와 우리를 돕기 시작했다.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자, 결국 친구들은 나에게 문을 넘어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떄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몸을 쓰는 일이다. 체육이라는 과목은 언제나 나의 주적이었으며, 나는 몸치로서의 모든 소양을 지니고 있었다. 겁많음, 둔함, 게으름의 3종 세트라고나 할까. 그런 나에게 내 키의 1.5배도 넘는 문을 타고 넘으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다. 게다가 당시 우리 학교 변기는 화변기였으므로 딛고 올라갈 수 있는 물건이 없었다.
내가 못하겠다며 발만 동동거리고 있자, 답답해진 친구들이 앞다투어 외치며 문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대충 물내리는 레버에 발을 올리고, 휴지걸이를 밟고, 그걸 지지대 삼아 양발을 양쪽 벽에 붙이고 어찌어찌 벽을 타고 오르라는 얘기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박쥐처럼 성을 타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같은 힘도, 민첩함도 없는데 휴지걸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벽을 무슨 수로 타고 넘으란 말인가?
나의 놀라운 운동신경을 익히 알고 있던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시끌벅적하게 의논을 하더니 도구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실에서 재빠르게 의자를 가져와 힘을 합쳐 문 위로 끌어올려 칸 안으로 내려주려 했다. 키가 작은 내가 무거운 의자를 어떻게 무사히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겨우 의자 위에 올라서서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문을 넘어갈 수 없었다. 하. 여기서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장면이 등장한다. 지금은 내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어리석게 굴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나는 교복 치마를 입은 채로 문을 넘는 건 너무 창피하다는(!) 소릴 했다. 그 상황에서 조심성을 보이다니, 맙소사.
역시나 친구들은 "야!!여자들끼리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냐!!" 며 혼을 냈다. 그러나 1학년 9반 아이들은 너무 착했다. 누군가가 공수해 온 체육복이 화장실 문을 타고 넘어왔고, 나는 주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불타는고구마'로 통하던 그 빨간바지를 치마 밑에 우물쭈물 받쳐입고는 다시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그 상태에서도 문을 넘을 수가 없었다. 의자를 밟고 섰다고는 해도 여전히 문은 나의 가슴 높이였다. 거기서는 다리를 아무리 뻗어봐도 문 위에 걸칠 수조차 없었다. 밖에서는 친구들이 제각기 떠들며 철봉운동을 하듯 펄쩍 점프를 해서 배를 걸쳐서 넘어오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일찍이 몸 쓰는 일에 관한 한 나보다 더한 쫄보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겁이 많았다. 펄쩍 뛰어올랐다가 균형을 잃고 문 밖으로 떨어지면 어쩌지.. 보다못한 친구들이 팔을 벌려 다같이 받아주겠다고까지 했지만, 그 중에서 나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는 없었다. (내가 생애 최고의 몸무게였던 건 놀랍게도 만삭의 임산부였던 때가 아니다. 바로 고3, 그때였다.) 연약한 그들이 내 무게를 지탱할 것 같지 않았고 화장실 바닥은 멀게만 보였고 나는 의자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잠깐 교실에 갔었던 세리가 돌아오더니 '수업시작 10분 남았다!' 라고 외쳤다. (석식 이후면 야자시간이어야 하는데 왜 수업이 있었지? 수업이었던 기억은 정확하니까 석식이 아니라 중식 이후였나. 하지만 시간이 분명 저녁시간이었던 것 같다. 3학년이었으니까 어쩌면 그날은 특별히 야자 전에 하는 수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강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이 교실로 오실 테고, 그러면 친구들도 모두 돌아가겠지? 그러면 나는 여기에 혼자 남게 될텐데?
순간 나는 펄쩍 뛰어올랐다. 문 위 모서리에 배를 걸치고 옆으로 다리를 넘겨 밖에 친구들이 놓아둔 의자 위로 착지했다. 채 5초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친구들 무리가 안도를 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떠들썩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다. 내가 당시에 워낙 모범생 이미지였기 때문에, 사십 분도 넘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단 한순간에(!) 용기를 낸 이유가 단지 '수업이 10분 남아서'였다는 사실에 빵 터진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내가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그 어떤 두려운 일도 이겨내는, 만화에 나올 법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우등생이라도 된 듯 보였던 것 같다. 사실 그게 아닌데. 수업이 시작되면 친구들이 다 가버리고 혼자 남는 게 두려워서 그랬던 건데.
팔을 내두르며 해명했지만 친구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고 졸지에 내 별명은 텐미닛이 되었다. 톱스타인 이효리의 노래에 아싸 그 자체인 내가 관련되다니. 10분 후에 시작한 수업에서 친구들은 신이 나서 선생님에게 내 얘기를 했고, 계속 나를 놀려대며 킥킥거렸다. 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그들에게 더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작은 일이지만 그때를 추억하면 친구들의 순수함이 떠올라 정겹기 그지없다. 답답하기 짝이 없던 나를 보고도 화 한 번 진정으로 내지 않고 너도나도 도와주려 하던 모습들. 목소리는 컸어도 계속 얼굴에 띄우고 있던 해맑은 웃음들. 이 상황이 짜증난다기보다는 재미있어 보이던 표정들. 하루에 14시간씩 학교에 갇혀 있어도 명랑함을 잃지 않던 아이들. 사회성 부족한 책벌레였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감싸주었던 소녀다운 천진함.
아직도 가끔 텐 미닛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면 그날이 떠오른다. 세리, 은영이, 수민이, 지애, 경은이, 그 밖의 많은 친구들. 지금은 연락이 끊긴지 오래지만, 다 잘 살고 있겠지? 나의 학창시절을 즐겁게 해준 그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든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