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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Apr 30. 2023

당근마켓에서 만난 대쪽같은 성품의 학생

최근에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하나 올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 엔시티의 포카(포토카드)를 팔기 위해서였다.      


포카는 앨범을 사면 들어있는, 아이돌의 사진이 인쇄된 카드로, 열혈 팬들은 이 포카를 드래곤 볼 모으듯이 수집한다. 그래서 원하는 멤버의 원하는 포카를 얻기 위한 교환과 판매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다. 나 역시 열혈 팬이긴 하지만 굳이 포카를 모으지는 않으므로 팔거나 나눔을 하고는 했다.     


구매자가 학생일 경우에는 주로 나눔을 하는 편인데, 이번에 연락이 온 사람도 학생이었다. 시험이 있어서 이번 주에는 물건을 가지러 오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알았다.     


학생이 채팅창에 물어왔다.

‘혹시 사진으로 하자 확인 가능할까요?’

열혈 팬들은 포카에 미세한 긁힘이나 손상이 있어도 하자가 있는 것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내가 내놓은 물건은 앨범을 사자마자 꺼낸 그대로라서 육안으로는 그런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하자 확인하는 사진은 어떻게 찍는지 모르지만, 혹시 학생이에요?’

내가 물었다.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혹시나 불쾌해할지 몰라 말을 덧붙였다.

‘학생이면 그냥 드릴 테니 와서 가지고 가세요~’     


나는 그 학생이 3천원이 굳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냥 알겠다고만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받은 답장은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학생이긴 하지만 판매로 올리셨으니 제가 돈을 내고 구매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눔 받으려고 학생 신분을 밝힌 것도 아니구요! 다음주 금요일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때 시간과 장소 정해서 주말에 봬요!’     


나는 이 답장을 읽고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 것이 미안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안타까웠다.     


 이제까지 포카를 샀던 구매자들은 그래도 거의 20대 직장인 아가씨들이었기 때문에 얼마간의 가격을 책정해서 올렸지만, 아직 용돈을 받는 처지의 학생에게는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이 학생은 나의 이런 마음이 자기를 무시하는 걸로 느껴졌나 보았다.     


나는 채팅창에 해명의 말을 건넸다.

‘학생한테 돈 받고 팔려니 제가 미안해서 그래요. 와서 보고 하자 있으면 안 해도 됩니다. 금요일에 연락주세요~’     


답장은 간단했다.

‘네. 그럼 금요일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문장의 끝에는 미소 짓는 이모티콘이 곁들여져 있었다. 이제 불쾌하진 않은가보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당근에 포카를 올릴 때 처음부터 나눔으로만 올려야겠다. 상대가 돈이 있든 없든 나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 않은가. 그 작은 것으로 푼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심산이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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