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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y 11. 2023

고수들이 가득했던 곳, 역사교육과

대학시절의 추억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나는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출신이다. 그럼 역사에 대해 잘 알겠네, 라고 생각하는 독자분도 계실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전공 공부에 매우 소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역사와도, 교육과도 관계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4년 내내 몸담았던 곳이라, 여느 과와 마찬가지로 우리 과에도 각종 고수가 즐비했던 사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 트리플크라운 고수


 역교과를 선택했을 때 나는 아주 순진하게, 이 정도면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단단히 착각한 것임을 깨달았다.

      

동기와 선배들 중에는 일명 트리플크라운이라고 해서, 수능 사탐과목 4가지 중 3가지를 전부 역사 3총사 – 국사, 세계사, 한국근현대사 – 로 선택한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7차 교육과정 하의 수능 기준이다.)    

 

그에 비해 나는 고작 가장 대중적인 한국근현대사 하나만 공부해서 들어왔을 뿐이었다. 당연히 세 과목의 기초를 빠삭하게 다지고 들어온 친구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내 눈에 그들은 마치 괴물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들이었다.

     

당시 국사와 세계사는 선택하는 학생이 매우 적은 과목이었기에 학교에서 잘 가르치지 않았고, 인강 강사조차 거의 없었다. 그런 악조건에도 그 두 과목을 선택했으니 그들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알 만하다.



2. 계보와 사극의 고수     


그런데 마침 동기들 중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고수 중의 고수였다. 나는 가장 기본인 조선시대만 외우고 있던 역대 왕들의 계보를 그는 무려 삼국시대까지 줄줄이 외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라웠다. 나는 간신히 고려시대까지는 외웠지만, 그보다 더 이전 시대의 계보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그 친구와 비벼볼 수 있었던 것이라면 바로 옛날 사극을 봤던 경험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용의 눈물이나 왕과 비 등의 대하사극을 좋아하는 특이한 아이였는데, 대학에 와서 드디어 나와 비슷한 존재와 조우한 것이다.     


나 역시 <대왕의 길>이라든가 <서궁>과 같은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마이너한 사극도 봤었지만, 그 친구는 한술 더 떴다. 나는 이름만 간신히 들어본 <조광조>나 <천둥소리>, <제국의 아침> 과 같은 극도로 마이너한 사극들의 애청자였던 것이다.     


그는 KBS 대하사극에 자주 출연한 배우 이진우의 팬이기도 했는데, 그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면서 친구들의 놀라워하는 반응을 즐기곤 했다. 연기적인 면에서만 팬이 아니라, 거의 이상형인 수준이라고 했다. (아마 우릴 놀리려고 일부러 과장했던 것 같다.)     


이진우는 물론 뛰어난 배우이시지만 우리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았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독특하고 재미있는 아이였다.     


입학하고 처음 치렀던 기말고사에서, 우리는 시험공부는 뒷전이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도 당연히 나와 비슷한 학점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평범한 3점대받았는데 그 친구는 4.1을 받았다.     


그랬다. 그 아이는 놀기도 잘 놀았지만 대단히 똑똑한 친구였던 것이다. 심지어 착하고 귀엽기까지 해서 학우들에게 두루두루 인기가 많았다. 여러모로 고수였다.     



3. 밀덕(밀리터리 덕후) 고수     


아마 역사 관련 과를 나온 독자분이라면 공감하실 것이다. 우리 과에는 매년, 정말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밀덕들이 입학했다.


주로 남학우들이었는데, 공통적으로 책을 아주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았으며 암기력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대체로 마음씨가 아주 곱고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전쟁사와 무기사에 너무나 박식해서, 가끔 교수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요한 전쟁은 물론이고 유명하지 않은 전쟁조차 발생한 연도, 전개과정, 결과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또 어떤 전쟁에서 어떤 신무기가 대활약을 했는지는 물론이고 각종 총이나 전투기, 잠수함 등의 일련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4. 불교와 한문의 고수     


이들은 분명 우리 과에 실재했을 것이나 내가 친했던 적은 없어서, 특정 누군가를 대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동기들 중에는 없었고 선배나 후배 중에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학과 스터디모임을 하는데, 같은 조의 한 선배가 다른 선배에게 불교사만 따로 강의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봤다. 아마 그 부탁을 받은 선배가 불교의 고수였을 것이다.     


한국사와 동양사를 공부할 때에는, 내가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도리없이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역사, 고승들의 사상에 빠삭해져야 한다. 심지어 유명한 불화까지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불교의 고수는 분명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 큰 덕을 보았을 것이다.     


한문 고수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배우면서 한문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신입생 때만 해도 내 이름 석 자와 월화수목금토일 말고는 한자로 쓸 줄 아는 단어가 전혀 없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게 순수한 무지의 상태였다. (대체 난 무슨 깡으로 역교과에 간 걸까. 미스터리다.)     


물론 학교는 그런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각종 사료 강독 수업과 논문 요약 과제들이 마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처음엔 한자로 가득한 논문을 읽기 어려워서, 동기들과 페이지를 나누어 각 할당된 페이지에 있는 한자를 옥편에서 찾아오는 방법을 썼다. 그리고 개인적인 공부를 통해 한자능력검정시험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한 3년을 보내고 나니 웬만한 논문은 옥편 없이도 거의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자를 아는 것과 한문을 읽을 줄 아는 것은 또 다른 얘기였다. 그나마 논문은 기본 뼈대가 한글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사료는 완전히 한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요 사료가 번역되어 있는 전공서적을 거의 외우듯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니 조금은 한문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한자 및 한문을 10년이 지난 지금은 싹 다 잊어버렸다. 내 머릿속은 다시 스무 살 때의 깨끗함으로 돌아가 버렸다. 인생무상이다.      



5. 체육대회의 고수

    

역교과 얘기를 하면서 웬 체육대회냐 하겠지만, 우리 과는 '역체과' 소리를 들었던 집단이었다. 선배들이 체육대회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를 불러내 연습을 시켰는데, 나 같이 운동과 담을 쌓은 사람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남학우는 주로 농구와 축구, 여학우는 발야구와 피구를 연습했는데, 나는 그 발야구라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왜냐면 내가 아무리 공을 차도 공이 멀리 날아가기는 커녕 떼구르르 구르기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모습을 선배와 동기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창피했다.

 

반면 고수들은 정말 잘했다. 특히 체육대회의 꽃인 축구를 잘하는 남학우는 예비역 선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물론 농구를 잘해도 인기가 많았다.      


우리보다 한 학번 선배 중 크지 않은 키에도 농구를 아주 잘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의 별명은 ‘농신’이었다. (처음 그 별명을 듣고 중국 전설에 나오는 농사와 의학을 관장하는 신인 ‘신농’ 이 연상되어서 엄청 웃었다.)

   

한편 동기 여학우 중에서 정예로만 선발된 피구팀은 승부욕이 엄청났다. 체육대회 본선에서 한 과와 붙어서 졌는데, 상대 팀이 꽤나 더티플레이를 한 모양이었다.     


우리 팀은 분해서 한참을 씩씩거리더니 상대 팀의 현수막을 보고는 냅다 달려가서 그것을 찢어버렸다(!) 무서운 애들이었다..     


체육대회 때는 디자인과 로고가 저마다 다른 과티를 입곤 했는데, 거기엔 일종의 슬로건이 적혀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우리 과는 ‘민중역사’였고 영교과는 ‘전진영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단연 수교과의 것이었다.

‘∑시그마로 하나되는 수학교육과’.          


나의 재학기간 동안 있었던 몇 번의 체육대회에서 우리 과는 대부분 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1등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2등이었다. 만년 1등이 누구였냐고? 물론 체교과였다.          




우리 과는 워낙 공동체주의가 강해서 매주 행사가 열렸는데, 개인 시간이 중요했던 나는 거기에 참석해야 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로 인해 선배나 동기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때뿐이고, 학우들과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내가 괜히 반항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 일에 열심히 참여했다면 훨씬 풍성하고 재미있게 대학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조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 복수전공은 국어교육과로 해야지.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빌려보고 발야구도 열심히 연습할 테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시도 때에는 되지 못했던 고수가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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