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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y 21. 2023

초딩입맛 엄마는 아이 몰래 양파를 골라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아이도 채소를 싫어한다. 몇몇 종류만 가리는 것이 아니라 채소라면 먹어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싫어한다.    

  

이 완고한 불호의 취향은 역시나 엄마인 내게 물려받은 것일 테다. 나는 나이가 서른 중반인 지금도 편식을 하는 초딩입맛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먹지 않는, 싫어하는 채소는 다음과 같다.     


익힌 양파 (생양파는 괜찮다)

고추 (맵든 안 맵든)

가지

고구마 줄기

마늘과 마늘쫑 (양념으로 들어가는 다진마늘은 어쩔 수 없지만)

기타 등등     


그래도 이 정도면 어린 시절보다 많이 발전한 것이다. 좋아하는 채소도 꽤 많다.     


나물을 잔뜩 넣은 비빔밥도 좋아하고, (그 와중에 도라지나물은 안 먹음) 짜장면에 오이 올린 것도 좋아하고, 햄버거에 양상추가 가득 들어간 것을 좋아하고, 삼겹살 먹을 때 고기보다 파채를 더 많이 먹는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아이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 딸아이는 대체 왜 모든 채소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주위 친구들 보면 그래도 콩나물 정도는 거의 먹던데, 그조차 싫단다. 먹어보기나 하고 싫다고 하면 이해는 하지, 생긴 것만 슥 보고는 입을 막아버린다. 어휴..

     

내가 어떤 요리에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양파를 싫어하다 보니, 어떨 때는 그것을 골라내거나 딱 양파만 남기고 다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당연히 그릇에 양파 더미가 남게 되는데 문제는 아이가 그걸 봤을 때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나 또한 아이에게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끼니마다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양파만 다 골라내고 남긴 걸 보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할까. 교육적 효과가 없을 게 뻔하다.     


초딩입맛이 식사 지도를 하려니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좋아하는 달달이 과자를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밥도 먹지 않고 매일 간식을 찾아대는 아이 때문에 나는 사탕과 젤리 등을 먹는 날(예를 들어 월수금)을 따로 정해주었다. 그런데 간식 먹는 날이 아닌 날에 내가 몽쉘이 먹고 싶은 게 문제다.     


먹는 모습을 들킬 수 없으니 결국 아이가 노는 동안 부엌에서 몰래몰래 껍질을 까서 한 입에 앙 넣어서 후다닥 먹어 치워야 한다. 엄마 노릇하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나는 촉촉한 초코칩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얼려 먹는 걸 좋아하는데, 이 또한 아이가 스스로 꺼내먹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4문형으로 아래 쪽 두 칸이 모두 냉동실이기 때문에 키 작은 아이도 얼마든지 문을 열고 간식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몹시 안타깝다. 촉촉한 초코칩을 얼려서 먹으면 약간의 퍽퍽함조차 사라져, 천상의 맛이 되는데.     


내가 봐도 참, 애가 애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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