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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y 24. 2023

악뮤 노래가 왜 이렇게 웅장하지

피아노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악뮤의 이찬혁은 본인이 직접 지은 긴 제목을 줄여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합니다. 작곡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 글에서도 19자의 제목을 그대로 적고자 합니다..^^)

    

악뮤가 2019년에 발표한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명곡이다. 나는 이 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피아노 선생님께 또 악보를 내밀었다. 선생님도 아~ 이 노래 알아요, 라고 하면서 흔쾌히 레슨을 해주기로 하셨다.     


이 좋은 노래를 아주 잘 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 나는 집에서도 맹연습에 돌입했다. 그리고 틈틈이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다.

“여보, 어때? 괜찮아?”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좀 미묘했다.

“음.. 왜 이렇게 쿵쿵 울리고 잔잔하지 않지?”   

  

우리 부부의 음악 취향은 정반대라서, 남편은 조용하고 서정적인 발라드를 즐겨 듣는 반면 나는 비트가 강렬한 음악을 좋아한다. 그때도 나도 모르게 내가 좋아하는 대로 친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남편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아주 잔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평소 자상하고 다정한 성격이지만 나의 글이나 연주를 평할 때는 이렇게 냉철한 면이 있다.     


이 피드백을 받아들여 최대한 잔잔하게, 볼륨을 줄여서 조심스럽게 쳤더니, 이번엔 너무 좋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 이거야. 나는 다음 수업 때도 이렇게 쳐보기로 했다.     


레슨 날, 선생님 앞에서 연습한 대로 연주를 했다. 분명 칭찬받을 수 있을 거라며 속으로 뿌듯해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 밖의 얘기가 나왔다.

    

“흠. 지금 전체적으로 너무 소심한 느낌이에요. 피아노(여리게 치라는 악상 기호)로 치더라도 충분히 뚜렷하고 선명하게 칠 수 있어요. 이렇게요.”


선생님이 나 대신 의자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앉더니 시범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의 연주를 들은 나는 아연실색했다.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음악이 정녕 내가 친 것과 같은 곡이란 말인가?     


충격을 받은 나는 가르침 받은 대로 좀더 자신감 있고 명확한 소리가 나도록 방향을 바꿔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남편에게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사전에 선생님이 이렇게 치라고 했어, 라고 밑밥을 깔아두었다.     


그런데 다 듣고 난 남편은 또다시 불호의 반응을 보였다.

“에이, 선생님이 틀렸어. 이 노래를 모르시는 거 아니야? 너무 쿵쾅거리잖아.”     


그 뒤로도 나는 소심함과 쿵쾅거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살살치면 소리가 묻힌다 했고, 너무 세게 치면 노래가 지나치게 웅장해진다며 주의하라고 했다.     


그러나 악보의 왼손 반주가 상당히 낮은 음역대인데다 옥타브 화음으로 이루어졌다보니, 내 실력으로는 적당한 소리와 음량을 찾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래서 포르테(세게)보다 피아노(여리게)가 어렵다고 하는 것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조표도 붙어있지 않고 아르페지오나 도약 등의 어려운 기교가 없다는 이유로 악보를 쉽게 보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보기보다 손에 익히기 힘들었고 원곡이 가진 감동을 표현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특히 원곡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부분이 도무지 만족스럽게 쳐지지 않았다. 이수현의 청아한 음색과 <항해>라는 앨범의 컨셉과도 연결되는 뛰어난 비유의 가사를 듣고 눈물까지 흘렸던 나인데. 아무리 해도 원곡의 절절함을 다 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노래만 잡고 있을 수 없는 것, 연주가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가 되자 선생님이 레슨을 마무리 지으셨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은 악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마 전, 집에서 오랜만에 이 곡을 쳐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예전보다 손끝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어려웠던 부분을 좀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고 표현 방법도 조금은 쉬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꾸준히 레슨 받고 연습한 결과 기본기가 약간 좋아진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매끄럽게 연주를 들려줄 수준은 못 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의 매니아인 남편이 완전히 만족할 것 같지도 않다. 대체 한 곡의 완성은 어디까지일까? 오늘도 초보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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