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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Jul 04. 2023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면 에메랄드 시티가

나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

 얼마 전 아이에게 <오즈의 마법사>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이 이야기를 읽는 건 너무 오랜만이어서, 아이만큼이나 나도 책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새삼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적인 스토리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며칠 동안이나 이 환상적인 동화에 푹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    

 

 

 이 동화에는 쉽고 감각적이며 상징적인 이미지가 많이 등장해서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줄거리의 세부적인 내용은 잊어도 이 이미지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     


 집을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의 거대하고 흉포한 토네이도, 동쪽 마녀에게 갈취(?)한 은구두, 마법사 오즈를 향한 여정을 나타내는 노란 벽돌길, 허수아비와 양철나무꾼과 겁쟁이사자가 각자 원하는 물건들, 구두 뒷굽을 세 번 부딪치면 발동되는 마법 등, 모두가 단순하지만 명쾌한 상징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 세 가지 소원의 대상 – 뇌, 심장, 용기 – 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삼총사가 대변하는 가치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삼총사 중 뇌, 즉 지혜와 지성을 상징하는 사람은 당연히 헤르미온느이고, 심장과 관련 있는 사람은 친구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주는 론이다. 그리고 용기를 나타내는 사람은 삼총사의 대장이자 행동력이 가장 두드러지는 해리이다.      


 나는 서양 문화권에서 이 세 가지 가치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페스탈로치의 이론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페스탈로치는 ‘3H’를 골고루 발달시켜 균형 있는 인간을 키워내는 교육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3H란 바로 Head - 지, Heart - 덕, Hand – 체이다. 오즈의 마법사와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엿볼 수 있는 3가지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도로시의 세 친구 –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사자 – 가 스스로 원하던 덕목을 갖추게 되어 결국 소원을 이루는 일은 결국 지덕체가 조화롭게 발현된 인간의 성공을 의미한다.      


 또 혼자서는 투성이인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의 조력을 얻어 볼드모트를 무찌르는 이야기도, 3H를 다 갖춘 인간이 가장 이상적이고 뛰어난 존재라는 뜻이 된다.     


 분석은 이쯤하고. 앞에서 말했듯 동화에 푹 빠진 나는 주인공 도로시처럼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왠지 그 끝에는 에메랄드 시티가 있어 나를 반겨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나 역시 이 여정에서 세 친구를 만났는데,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주제로 한 세 종류의 문화예술 컨텐츠였다. 차례로 만나보겠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1939년에 개봉한 영화를 감상할 때는 사실적이고 화려한 CG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당시의 첨단기술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옛날 영화의 특수효과는 아무리 뛰어나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신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훌륭한 요소들에 집중하자. 내 추천은 도로시의 유명한 비非인간 친구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허수아비 역을 맡은 배우는 정말로 몸이 짚으로 만들어진 듯한 대단한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준다. 틈만 나면 풀썩풀썩 주저앉는 통에, 옆에 있는 도로시가 툭하면 목덜미를 잡고 벌떡벌떡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 개그 포인트다.      


양철나무꾼의 연기도 좋지만 겁쟁이사자는 그보다 더 뛰어나다. 둔한 표정과 말투, 소심한 걸음걸이가 매우 익살스럽다. 에메랄드 시티에 들어서자 겁먹은 나머지 누가 자기 꼬리를 잡아당겼냐며 엉엉 우는 장면은 키득키득 웃음이 나온다. 그 꼬리로 틈만 나면 눈물을 닦는 모습도 귀엽다.     


그 밖에도 워낙 많은 것이 높게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뮤지컬 영화답게 그중 최고는 단연 노래다. 이제 노란 벽돌길에서 만난 다음 친구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오즈의 마법사 환상곡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해도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듯한 노래에 대해 내가 뭘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신 처음으로 이 곡을 불렀던, 영화 속 도로시 역을 맡았던 배우 주디 갈란드의 말을 옮겨보겠다.

      

 〈Over the Rainbow〉는 내 인생의 일부분이다.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확신한다. 이 노래를 수천번도 넘게 불렀지만, 여전히 가장 마음에 와닿는 노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세계영화작품사전 : 뮤지컬 영화, 김혜선, 김지석)     


 Over the Rainbow는 가수들이 부른 것도 물론 듣기 좋지만 나는 기악으로 편곡된 버전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지휘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버전인 <Fantasy for Wizard of Oz오즈의 마법사 환상곡>이다.

    

 이 곡에서는 그 유명한 주제 선율이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로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특히 중반부의 포근한 호른 선율과 후반부의 바이올린 솔로, 그리고 이어지는 풍성하고 웅장한 관현악이 백미다. 도로시의 집을 날려버린 토네이도 같은 감동이 휘몰아친다.      


 게다가 이런 청각적 황홀함에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더하면 감격은 몇 배가 된다. 다음은 보는 게 아름다운 친구의 얘기를 할 차례다.     


아사다 마오의 피겨스케이팅     

 맞다. 바로 그 아사다 마오다.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와 자웅을 겨뤘던 일본 선수다. 아사다는 주니어 시절이었던 2004-2005 시즌의 쇼트프로그램 음악으로 바로 앞에서 언급한 오즈의 마법사 환상곡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사다는 김연아의 아성을 넘지 못한 2인자로만 기억되는 것 같다. 그러나 주니어 때만 해도 아사다는 김연아를 포함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언터쳐블한 선수였다. 실제로 주니어 데뷔 시즌에 아사다는 출전한 모든 국제대회에서 우승했다. (바로 다음 해, 김연아 역시 같은 기록을 세운다)    

 

 그 대단했던 시즌의 쇼트프로그램이 바로 오즈의 마법사다. 나는 아사다의 10년이 넘는 커리어를 통틀어 이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한다. 선수의 장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안무로 이루어져 있고, 또 그것이 음악과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아사다가 어릴 때부터 천재소녀로 각광받은 이유는 물론 트리플 악셀 덕분이지만, 사실 그녀의 진짜 강점은 점프가 아닌 스케이팅과 유연성이다. 영상을 보면 고작 14살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유연하고 매끄러운 스케이팅 스킬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경기의 절정은 레이백 스핀(영상에서는 3분 24초에 등장하지만 흐름 상 3분 15초부터 보기를 권한다)이다. Over the Rainbow의 서정적인 선율이 오케스트라 총주로 최고점에 치달을 때, 압도적인 유연성으로 허리를 완전히 뒤로 젖히며 대단히 아름다운 포지션으로 회전하는 장면이다. 음악의 성대함과 스포츠의 눈부신 기술이 어우러져 극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피겨스케이팅의 매력을 단 몇 초만에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더 화질이 좋은 다른 대회의 영상이 있었지만, 링크한 영상에서 레이백 스핀이 훨씬 더 잘 잡혔다. 초반에 스케이트 끈이 풀리는 바람에 경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드문 모습도 녹화되어 있어, 여러모로 볼 것이 많다.)    

 

 아마 저 파란색의 의상은 영화 속 도로시의 원피스 색깔을 오마주한 게 아닐까 싶다. 원래 은반과 파랑의 궁합은 매우 좋아서 청명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곤 하는데, 이 영상에선 선수 본인의 귀여움까지 더해져 더욱 예쁜 모습이다.          




 노란 벽돌길의 끝에는 역시 나만의 에메랄드 시티가 있었다. 거기엔 오즈의 마법사를 주제로 한 멋진 작품들이 가득해 내 정서와 내면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매일 현실의 일에 시달리고 기 빨리는 INFP인 나에게 그곳은 무지개 너머에 있는 환상의 세계이자 이상향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내가 느낀 기쁨과 즐거움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오즈의 마법 덕분일 것이다. 세상사에 지친 어른들도 가끔은 그의 장난스러운 주문에 걸려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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