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 두 아이를 집에 들인 후 내게 생긴 변화 한가지
내가 어릴적부터 갓 성인이 될 때까지 고양이는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요망한 동물이라고 여겨지고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며, 동네 아이들은 고양이에게 돌을 던지며 함부로 대했다. 나 역시 고양이를 무서운 동물로 오해하며 강아지만 좋아라했다.
그랬던 내가 평생 지켜주고 싶은 두 마리의 냐옹이와 살고 있다. 첫번째 냐옹이는 우리 할머니네 집에 놀러왔다가 시장 길목에서 아파 보이는 냐옹이었다. 눈이 아프고, 기침을 하는 아픈 아기였다. 데리고 병원에 가니 결막염과 폐렴이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약을 써도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약을 꼬박 꼬박 멕였고 아기는 곧 잦은 기침을 멈췄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 당시 아주 쪼그맸던 이 아이를 나는 꼬미라고 부른다.
두번째 냥이는 반포 재건축을 하게 되며 남게 될 고양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입양했다. 이 아이는 다행히도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아주 아주 말랐다.
그간 너무 굶주렸는지 구조할 당시 간식에 쉽게 유혹당해 나에게 와주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놀이를 너무 좋아하고 음식도 여전히 너무 좋아하는 식탐대마왕이 되었다. 하얀 털에 검은 점박이가 있는 이 아이를 나는 도토라고 부른다.
냐옹이들을 지켜주고 싶고, 냐옹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간이 되면서 생긴 변화는 세상의 길 위의 고양이들이 신경쓰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했다면, 이제는 비가 오면 길거리의 냥냥이들이 어디서 잘 숨어 있을까, 비 맞으면 폐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는데하며 걱정이 된다. 또 겨울이 오면 집에서 아늑하게 감자칩 먹어야지!하는 생각만 들었는데, 이제 추운데 냐옹이들이 어디서 몸을 잘 녹이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
길에서 냐옹이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사람 조심해 아무나 따라가지 말고 차 조심하고 꼭 행복하라고 빈다.
길 위에서 아파보이거나 위급한 상황의 고양이나 배고픈 고양이를 만나면 캔을 주든 구조를 요청한다.
차라리 고양이를 잘 몰랐다면 이런 무거운 마음도 안 들고 좀 더 속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무관심한 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요즘은 걱정만 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의 냐옹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내어준다. 나 때문에 혹시 해꼬지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릇을 안 보이는 곳에 몰래 숨겨둔다.
길 위에서 태어난 모든 고양이와 동물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