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면 관심없던 주변이도 이를 좋은 시선으로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꼽는 '영화 보기'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한 때는 나도 억지로 영화 보기를 취미로 만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 100작'나 사람들이 영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내가 뭘 좀 모르는 부족한 사람처럼 보여질 것 같아 AI, 아마겟돈,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안나 카레니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색 계 같은 영화를 열심히 보기도 했다. 마치 숙제처럼 억지로 꾸역꾸역 말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는 어떻냐하면,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색 계는 기억이 남)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문화를 즐기는 사람 같다고 생각이 들자 숙제처럼 영화보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르고 난 후에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몇몇 영화를 직접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비로소 인생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찾았다. 몇년 전, 고성으로 여행을 갔다가 체크아웃 전에 침대에 누워 쉬면서 TV를 틀어 넘기다 '리틀 포레스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긴장시키는 요소는 하나 없는 잔잔한 영화였지만 아주 몰입해서 봤다. 곧 체크아웃을 해야했기에 아쉽게도 시청을 중단해야 했고, 곧 집으로 가서 넷플릭스로 재시청을 했다. 영화를 다 본 후, 드디어 누군가 Favorite 영화가 뭐냐고 하면 드디어 답할 수 있는 영화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소위 '필'이 꽂힐 때가 아니면 요리를 즐겨하지 않는다. 심지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끼니를 잘 보냈다고 느끼는 미식가도 아니다. 적당히 달고 짜고 새콤하면 맛잇다고 인식한다. 복잡미묘한 음식의 맛을 즐기며 먹는 사람이 아니다. 적당히 배만 부르면 그만인 그런 것이다. 그런 나는 도대체 왜 음식을 주제로 한 '리틀 포레스트'를 감명 깊게 보았을까?
사실 별 관심이 없었는데 주변의 누군가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도 관심이 덩달아 생기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비호감이 아닌 사람을 뺀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럴 수 있다.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비슷한 이유로 작용했다. 태리씨가 본인이 만든 음식을 한입 맛본 후 너무 맛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할 때, 요리를 하나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소중하게 다룰 때, 아카시아를 식재료로 활용할 때 '우와 신기하다 나도 당장 요리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 나온 알록달록 예쁜 꽃 파스타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서 네이버에 '리틀 포레스트 꽃 파스타'를 검색해보았다. 식용 꽃은 구하기가 어렵다. 패스. 그 다음으로는 집 옆 슈퍼에서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 배추로 영화에 나온 배추전을 따라 만들어보았다. 배추 밑동을 칼로 살짝 갈라서 배추가 평평하게 펴지도록 한 후 밀가루물을 묻힌다. 기름을 넉넉히 팬에 두르고 뜨거워지면 배추를 올린다. 노릇노릇해지면 간장에 식초랑 얇게 썬 청양고추를 넣은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는다. 내가 만들엇지만 만족스럽고 맛있다! 나의 이 배추전을 맛본 나의 어린 20살 룸메이트는 너무 맛잇다고 했다. 이후에 요리를 증말 못하는 이 룸메이트는 자신도 배추전을 만들어주겠다며 나와 싱가폴에서 온 룸메이트에게 배추전을 해주었다. 이 친구도 나의 취향이 물들은 게 아니었을까?(뿌듯)
'영화 보기'를 억지로 취미로 삼은 후 느낀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시도를 안해본 것보다는 나을 수는 있을 수도 있다. 어디가서 '아 AI! 나도 봤어.' 혹은 '아 아마겟돈 그거!'라며 대화에 첨언할 수는 있지 않나.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음식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최고의 영화로 뽑는 것을 통해 느낀 것은 무언가를 특별히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좋아하게 될 수 있다. 태리씨가 요리를 너무 좋아하니 나도 그러고 싶어진 것처럼. 그러니 각자 자신의 취향을 열심히 뽐내자. 다른 사람이 나를 통해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갖게 될 수 있으니. 세상을 더욱 풍요로운 취향으로 물들이자.
+ P.S. 나의 취향은?
플렌테리어
감자칩(초록색 포카칩만 인정)
온갖 에세이들
다카키 나오코의 만화책
아이스 바닐라 라떼
불필요한 지출 방지로 돈 아끼기
힙합 + R&B + 뉴에이지 + 기타 inst.곡
시크한 룩 + 캐쥬얼 룩
플로럴 패턴
스릴러 + 잔잔한 영화(e.g.,카모메 식당)
줄 맞춰진 단정한 공간
플로럴과 머스크가 합쳐진 향
파스텔 색상
은은한 노란색 조명
재미있는 사람
무쌍의 사막여우 같은 재미 교포상의 남자
트렌드를 지나치게 따라하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들
+ to be continued... (누군가에 영향을 받은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