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에코백을 들고 다닌다. 에코백을 좋아하는데에는 나만의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여성용 핸드백은 가죽백인데 나는 가죽 가방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동물권 관련해서도 그렇기도 하고(부족한 부분이 많아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무겁고, 항상 들고 다니는 다이어리와 파우치를 담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 반면, 에코백은 가벼워 어깨가 편하고, 공간도 넉넉해서 들고 다니기 편하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에코백이 많은데, 내가 쓰는 에코백 중 직접 구매한 에코백은 하나도 없다. 엄마가 어디서 사은품으로 얻어오거나 언니가 사놓고 안 쓰는 에코백들이다. 최근에 싱가폴 여행을 갔다가 Typo라는 호주의 문구 샵에서 꽤 마음에 드는 에코백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플로럴 패턴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 기준 가격이 꽤 되었고, 그 가격을 지불할 정도로 사고 싶지는 않아서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 최근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나만의 에코백을 직접 만들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김중혁 작가의 '오늘 딱 하루만 잘 살아 볼까?'라는 하루에 하나씩 실천해보면 재밌을만한 것들 100가지들이 제안되어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와 이거 당장 해보고 싶다 하는 것들을 다이어리에 적어내렸다.
- 집 안에 핸드폰 금지 구역 설정해보기
- 커튼을 이용해서 나만의 아지트 만들기
- 유리잔, 티셔츠, 스티커 등 나만의 것 제작해보기
- 가구의 위치를 변경하기
-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크게 인쇄하기
- 나만의 모빌 만들기
- 나만의 에코백 디자인 하기
사실 모두 하루에 다 해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들을 색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색칠하고 나니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냥 이전에 사고 싶었던 에코백이 있기도 했고, 가장 재미있을 것 같아 첫번째로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를 도전했다. 몇 년전에 천가게라는 온라인 천 쇼핑몰에서 구매한 원단이 떠올랐다. 서둘러 드레스룸의 서랍에 곱게 접혀져 있던 원단을 꺼내왔다. 엄마 방에서는 바느질 바구니를, 거실 선반장에서는 거대한 가위를 꺼냈다.
부엌의 아일랜드 식탁을 나의 작업대로 삼아 준비물들을 올려두었다. 냥냥이들은 평소에 앉아있거나 누워있기만 하는 냥반이 갑자기 일어나서 바삐 움직여대니 덩달아 신이 났다. 작업대에 올라와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톡톡 건드린다. 원단을 자르기 전에 필요한 것은 두꺼운 종이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이다. 골판지를 대신할만한 게 있나 주변을 둘러봤다. 엄마가 버리려던 택배 박스가 바로 옆에 있었다. 박스의 한 면면을 잘라 원하는 에코백의 디자인의 절반 부분을 그렸다. 원단 두겹을 한번에 자르면 좌우대칭이 만들어지기에 반쪽만 그리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선인 부분은 30cm 자를 이용하고 곡선인 부분은 대충 눈대중으로 연결했다. 어깨에 가방을 맺을 때, 리본 매듭이 보여지면 좋겠어서 그렇게 디자인했다.
원단 위에 설계도를 올리고 펜으로 겉 테두리를 따라 그린다. 그 다음 가위로 펜 자국을 따라 자른다. 원단이 다 준비되면, 당근마켓에서 3만원에 구입한 미니 재봉틀을 사용해 재봉을 한다.
실용성을 중시해서 나름 안에는 외출할 때 무조건 들고 다니는 립밤이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었다. 덤으로 펜이랑 차 키가 들어갈 자리도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니 내 마음에 쏙 드는 에코백이 완성되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곳에는 들고 다닐 수 없지만, 그럴 일이 거의 없는 내가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었다. 자세히 보면 재봉도 서툴고 바로 건조를 안 해서 주름이 자글자글 져버렸지만, 멜 때마다 기분이 설레고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나의 가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