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들이 겪을 일 아니라고 무감한 사람들
이번 글에는 욕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
지금으로부터 약 5-6년 전 있었던 일이다. 당시 LEET 시험을 준비하느라 강남 메가스터디 학원 자습실에 공부를 하러 갔다. 주말이라 자습실에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한 5-6명이었다.
자습을 하다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칸은 딱 2개. 한 칸에 들어갔다가 휴지가 없길래 다른 칸으로 옮겼다. 볼 일을 보고 있는데 그 칸에 누가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변이든 뭐든 무조건 휴지를 써야 하는데, 그 칸에는 화장지가 없어서 다시 나와야 할 텐데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옷을 내리고 앉는 소리도 없이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공중 화장실을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화장실 칸의 위나 아래를 보는 습관이 있다. 소위 '몰카국'인 한국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나도 그 피해를 받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여자 공중화장실 옆에 '불법 촬영 금지' 딱지가 많이 붙어 있는 나라가 어딨나.
자연스럽게 또 화장실 칸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에는 칸을 넘어온 회색 아이폰이 나를 향해 있었다. 순간 얼어버렸는데, 바로 이어서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서 다행이었다. 어릴 적 당황하는 순간에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경험을 한 후, 다음에는 꼭 소리 지르려 노력해야지 했던 게 떠올랐다. 그 기억으로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곧이어 그 새끼는 문을 열고 도망갔다. 나 또한 문을 열고 따라갔다. 그 새끼는 여자 화장실 오른편에 있는 비상구 문을 열어 계단으로 도망가려 했다. 도망가려는 그 새끼 뒷목을 잡았다. 돌아서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 얼굴을 보니 너무나 멀쩡하다. 흔히 이런 짓은 오타쿠나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새끼의 뺨이든 머리든 뭐든 미친듯이 때리고 싶었는데, 때려서는 안 된다는 슈퍼 에고가 너무 강했던 것일까. 결국 때리지 못했다.
대신 그 새끼는 나에게서 욕을 쳐먹었다. 아마 여자한테서는 그런 욕들을 처음 들어봤을 거다. 정신을 좀 차리고 나니 복도에 자습실에 있었던 남자들이 나와 있다. 이 새끼가 나 불법 촬영하는 거 잡았으니 이 새끼 도망 안 가게 옆에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 엘리베이터에 나, 그 새끼, 다른 남자 이렇게 타고 2층에 있는 학원 데스크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그 새끼 뒷덜미를 잡고 핸드폰을 뺏었다.
사진첩에 들어가 내 모습을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 다른 피해자가 있을까 싶어 더 아래로 스크롤했다. 중간중간에 여자친구랑 찍은 사진, 강아지 사진이 보였다. 멀쩡한 얼굴과 여자친구가 있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여자 화장실에 몰래 기어 들어와 볼 일 보는 여자의 모습을 촬영한다니.
이번에는 전화 목록을 봤다. 여자친구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통화를 걸었다. 네 남자친구가 이딴 짓이나 하고 다니니 당장 그만 만나라고 말하려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라도 남길 걸 후회된다. 아마 애인이 그 딴짓을 하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하고 계속 만났겠지) 이번에는 전화 목록에 있는 그 새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아들이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하는 거 현행범으로 잡혔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돌아오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만 봐달라는 말이었다. 그 사람은 끝끝내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2층 데스크에 도착해 앉아 있는 직원에게 상황을 말하며 경찰 불러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취급한다. 진정하고 안에 들어와서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겠다 싶어 무시하고 직접 경찰에 전화했다. 경찰관분이 도착해 조사 후 말하길 그 새끼 핸드폰에서 내 모습을 찾았다고 한다. 일반 사진첩이 아닌 다른 걸 사용해서 나는 찾을 수 없었던 거라고 한다.
그 새끼는 나보다 2살 많은 90년생, 나와 같은 서초구에서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살았고, 의전을 목표로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이대로 계속 진행해 봤자 벌금 200만원 밖에 안 나온다며 합의를 보는 게 낫다고 했다. 내가 받은 피해는 고작 200만원 어치이구나. 이러니 불법 촬영이 판치지. 합의금은 보통 얼마냐고 물으니 처벌금 200만원에서 조금 늘어난 수준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날 조금 노출된 옷을 입어서 그런 일을 당한 걸까. 아무도 내게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날 만난 경찰관이, 조사관이 그렇게만 생각할 것 같아서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지금껏 내가 경험한 세상은 그런 일의 피해자에게 옷차림, 평소 행실을 탓해왔으니까.
불법 촬영 당한 일을 전해 들은 외할아버지는 해맑게 웃으며 '그 놈이랑 결혼해야겠네'라고 했다. 남자 사촌 동생은 '누나, 그럼 걔가 싫어 아니면 OO가 더 싫어?'라며 밸런스 게임을 제안했다. 자신들이 당할만한 일이 아니라 이렇게도 무딘 걸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폭행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일테니 이제는 참지 않으려고 말이다. 힘이 딸리면 눈알이라도 찌르지 뭐
- 여자를 성적 도구로 여겨 성희롱, 성폭행, 살해하는 새끼들은 모두 뒤지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