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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자 Mar 10. 2023

내 침대에서 피부 관리를 받으면 일어나는 것들

나의 친애하는 피부 관리사 아주머니

매일 아침/저녁 세안 후 나는 토너와 가끔 한국에 오는 형부가 쓰다가 두고 간 피지오겔/제로이드 크림을 바른다. 이런 나는 그래도 나름 매주 1회 피부 관리를 받고 있다. 심지어 그 기간은 현재까지 대략 6년이 되었다. 기간이 기간인만큼 나와 관리사 분은 꽤나 친한 사이이다.

나잇대가 우리 엄마보다 조금 적은 이 분을 나는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아주머니는 우리 집으로 직접 피부 관리를 해주시러 오셔서 나는 내 침대에 누워서 편안하게 피부 관리를 받는다. 가끔 너무 편해서 관리가 끝나도 계속 누워서 잘 때도 있다. 아주머니와 지금껏 오랫동안 같이 인연을 맺고 있을 수 있는 것은 가성비 좋은 서비스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다름 아닌 아주머니라는 사람이 좋아서라기 때문이다.

나는 서비스를 받고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는 입장이기에 이런 경우 고객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예외였다. 오히려 나는 아주머니에게 자주 쓴소리를 듣고 핀잔을 듣는다. 아주머니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시곤 한다. 한번은 내가 기껏 열심히 일본식 양파덮밥을 만들어 드렸는데 '좀 짜네'라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이런 부분 때문에 예민한 나는 초기에 아주머니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관리가 끝나 아주머니가 떠나시면 엄마에게 가서 '엄마... 근데 아주머니 나를 너무 막 대하는 거 같지 않아?'라고 의기소침하게 말하면 엄마는 '그거는 아주머니 성격이야.'라고 했다. (엄마한텐 안 그러시잖아!)
그러나 결국 이러한 과정을 지나 아주머니는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마사지 크림을 바르고 얼굴을 오랫동안 롤링을 해주는 관리를 받을 때 우리는 재미있는 대화의 꽃을 이어간다. 나는 아주머니와 대화하면서 자주 힐링을 받곤 한다. 새로운 해가 다가와 나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2023년 목표는 어떤 거에요?'

'음. 나는 눈에 띄는 삶을 살거야. 아가씨도 눈에 띄는 삶을 살길 바래'


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발에 치이는 돌처럼 살고 싶을 때도 있는데, 눈에 띄는 삶이라.
그래 나도 이제는 멋지고 남들 눈에 튀게 살봐야겠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주머니는 외적으로 꾸미는 것에 있어서 부지런하지 못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키도 크고 날씬해서 멋지게 꾸미고 다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텐데 안 그러니 아깝다.
외적으로 잘 꾸미는 게 생각보다 중요해'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귀찮아서 실천을 못하고 있었던 나는 속으로 '그래! 아주머니 말대로 멋지고 화려하게 입고 다녀보는 거야!' 하며 당분간은 좀 꾸미고 다니곤 했다.
(명품으로 치장하는 것이 아닌 가지고 있는 것들로 최대한 꾸며 입는 것을 말한다.)


아주머니는 기브앤테이크가 아주 확실한 사람이라 받은 게 있으면 반드시 갚으시는 게 인상 깊다. 관리를 받는 시간대가 식사 시간에 애매하게 걸쳐있어 중간에 같이 식사를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별 것 없는 간소한 식사를 대접하거나, 집에 있는 크리스마스 선인장 한 줄기를 선물해드리거나 하면, 아주머니는 항상 다시 무언가로 보답을 해주었다. 정말 정말 맛있는 아주머니표 오이지 반찬을 또 만들어서 주거나, 직접 만든 진주 귀걸이, 과자, 라면, 목도리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신다. (아주머니가 만든 오이지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팔면 대박 날 수준)


내 기준에 아주머니는 조금 특별한 삶을 사셨다. 어릴 적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나 살림을 차리고 어린 자식들을 떠나버린 것, 그런 아버지가 밉지만 도리라 생각해서 아버지를 챙기는 것, 막 성인일 적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남동생과 남자 사촌동생들의 밥을 홀로 차려주고 손으로 빨래해주었던 것,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인해 결국 포승줄에 이끌려 가는 모습을 목격한 것, 샵에서 일하지 않고 출장을 다니게 된 계기는 남편이 술만 마시면 성격이 변해서 샵에 나타날까봐 때문인 것, 1회당 그닥 높은 비용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면서 이 지역 저 지역에 홍길동처럼 나타나는 것들이 그렇다.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듣다보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안쓰럽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쨋든 여전히 나는 아주머니에게 자주 꾸지름을 듣지만,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라고 여기려 한다. (혹시 가스라이팅이 의심되면 댓글에 '!'을 달아주세요!)


우연히 시작된 아주머니와 나의 인연이 될 수 있을때까지 지속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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