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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자 Oct 30. 2022

잠자는 엄마의 숨결에서 나는 할머니 냄새

점점 나이드는 엄마의 노화를 늦추는 방법

엄마, 나, 별비, 할무니, 할부지, 그리고 남자친구 SG와 여행을 다녀왔다. 무려 철원, 포천이라는 곳으로 말이다. 이곳을 간 이유는 sg도 평일에 만날 겸, 할무니 할부지와 여행을 할 겸, 별비가 행복하길 바랄 겸 그리고 아마도 내가 행복하길 바랄 겸 떠난 것이었다. 운전 면허를 땄지만 고속도로 운전은 아직 해본 적이 없기에 운전은 어무니가 하셨다. 반려동물 동반(애견이란 말은 지양합시다)할 수 있는 펜션을 예약했다. 별비가 혼자서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좋은 펜션으로 말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다 치매를 앓고 계신다. 다행히 아주 심하지는 않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더 증세가 나타나는 편이다.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신다. 나는 최근까지 할아버지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할아버지 지금 그거 n번째 물어보는 거야~!" 하면 "그랬나?" 라고 하거나 할 법한데 아무 반응을 하지 않길래 조금 더 오바해서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우울증도 있고 화도 많이 낸다. 화는 오직 할머니에게만 낸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몇달동안만 같이 산 적이 있는데 그 때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폭언과 고함을 퍼붓는 걸 여러 번 목격을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황혼이혼을 하길 적극적으로 바랠 정도였다. 나는 그럴때마다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 왜 그래!"라고 하거나 할머니 편을 드는 말을 하거나 했다. 또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문자로도 할머니한테 그러지 말라는 내용으로 문자를 보내면, "나를 너무 나쁜 할아버지로 생각하진 말아다오"라는 식으로 말해서 할아버지가 미우면서도 짠한 양가감정이 들기도 했었다. 나와 할아버지의 사이는 유독 각별한 편이었지만, 할아버지가 나의 반려친구 별비가 짖는다고 리모콘으로 머리를 때릴 때와 같이 지내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멀어졌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엄청나게 실망을 했고 할머니를 혼자 두고 집을 나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필 코로나가 터지면서 두 분이서만 하루종일 집에만 있을 때, 사회생활이나 햇빛을 못 보는 할아버지의 우울감이 더 심해져 할머니를 더 정서적으로 학대할 게 심해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옆에 있으면 목소리도 작아지고 위축되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엄마와 이모들에게 말했다.



몇 개월이 흐른 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요양 센터 같은 곳을 다니게 되었다. 버스 기사가 와서 아침 8시쯤 픽업하고 점심, 저녁 모두 제공한 후 저녁에 집에 모셔다 드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또래들을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특유의 소셜 스킬과 인자함으로 그 곳의 퀸카가 되셨다.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와 언성 높이며 싸우셨단다. 이 센터를 다닌 이후로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 이상 하루종일 둘만 보고 지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사회생활도, 재미있는 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할머니는 활기를 찾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유머와 할아버지를 놀리는 멘트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컸고 자주, 크게 웃으셨다. 이 저녁 식사는 할머니가 센터를 다니게 되어 정말 정말 다행이다라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여행에서 본 할아버지는 말이 거의 없었고, 이전의 할머니처럼 목소리가 작았다. 할아버지가 말 할 때는 목이 메인듯한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듣기 싫고 짜증이 나는 순간도 있었다. 매운탕 식당에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본 할아버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본 할아버지의 얼굴은 더욱 노쇠해졌을 때의 할아버지 모습이 쉽게 상상되는 얼굴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내오며 봤던 활력있던 할아버지가 이제는 계단 5개를 오르는 것도 힘들어한다. '할아버지도 진짜 저렇게 되는구나, 할머니도 저렇게 허리가 꼬부라지지 않고 똑바랐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가까운 사람들의 성장(사촌동생들)은 자주 경험했지만 노화는 처음으로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우리 엄마도 60살이 넘었다. 엄마는 또래에 비해서 젊고 예쁜 편이라 엄마가 늙었다는 걸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 엄마에게 같이 영화를 보자고 졸라 거실에서 이불을 펴놓고 누었다. 엄마는 곧 잠에 들었고 나는 지나쳐가는 엄마의 숨에서 순간 할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그 때, 엄마도 늙고 있구나 엄마도 할머니가 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충격이 컸다. 그 후로 엄마가 더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모습들이 어떨지 상상하기도 했다.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엄마를 보고 '엄마, 이렇게 물건 잘 안 버리는 거 정말 할머니 같애!'라고 하려다가 그 말을 하면 엄마가 더 빨리 할머니가 될 것 같아서 서둘러 말을 삼켰다. 이제부터 엄마 앞에서 '할머니'라는 말은 금지다. 오히려 더욱 더 젊은 옷을 입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도록 응원할테다. 엄마는 자식이 힘들어하는 걸 볼 때 가장 많이 늙을 것 같다. 그러려면 내가 더 행복해지는 게 급선무이다. 엄마와 내가 더욱 행복해질때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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