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자신의 성격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꽤 있다. 나의 감정보다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려는 것, 그로 인해 오히려 상처받고 예민해져 피해 의식을 느끼는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가장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사람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바보같이 구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바보같고 일명 돌+i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하지만, 유재석님처럼 말로 재치있게 웃기는 스타일은 못 되고, 우스꽝스럽게 웃길 수는 있었기에 어릴 적부터 그렇게 남들을 웃기곤 했다. 또, 의도하지 않아도 가끔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바로 엉뚱함으로 말이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엉뚱한 아이었던 게 분명하다. 엄마가 모아준 나의 앨범에서 과거 유치원 선생님이 내게 써준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OO아, 너는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하다'고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엉뚱했던 거야?)
중학생 시절은 엉뚱함이 대폭발하던 시기였다. 당시 친하게 지냈던 한 친구와 누가누가 더 엉뚱한지를 대결을 하게 되었다. 더 엉뚱할수록 좋은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 같은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며 공정하게 판단하기로 했다. '우리 둘 중에서 누가 더 엉뚱해?'라고 물어보았을 때 입에서 내 이름이 불려질 때는 기쁨이 느껴졌다. 당시에 나는 나의 엉뚱함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는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나는 엉뚱함이란 한끗 차이로 좋게는 귀여운 것이었고, 나쁘게는 특이하고 이상한 것이며, 허허실실 웃으며 바보같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를 꽁꽁 숨기게 되었다. 사회생활 초년생 때,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 여부를 다루는 결정적인 인터뷰에서 부사장은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하는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그리곤 이어서 "혹시 좀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나? 특이한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할 때에는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턴으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딱히 내 본 성격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들의 눈에는 엉뚱하게 보였던 것이다. 나의 어떤 점이 엉뚱하고 특이하게 비춰지는지 여전히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바보는 자기가 바보인 줄 모른다'라는 말처럼, 무엇이 엉뚱한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 정말 내가 엉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넷플릭스의 Love Blind 같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꽤 자주 사람들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바보같아 보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자신을 조금 바보같이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단단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엥, 이건 내가 생각해 온 것과 전혀 다르잖아. 나는 바보같아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도도하고 시크한(?) 이미지를 메이킹했는데!
그러니까 바보처럼 보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빈도였다. 즉, 얼마나 일관되게 특정 모습을 보이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열번 중 아홉번을 바보같이 행동하는 것과 두세번 하는 것과 보여지는 이미지는 다르다. 나는 열번 중 열번을 바보같이 굴다보니, 정말 나를 바보처럼 여기고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채렸다. 적당한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과거 정규직 전환 인터뷰 때의 질문이 뇌리에 깊게 남아 나를 꽁꽁 숨겨가면서 4년간 회사생활을 이어갔고, 중간에는 승진을 하기도 했다. 나를 숨겼기에 그나마 사회생활을 이어간 것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엉뚱하고 돌+i 같은 성격은 이로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톡톡 튀는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도 하였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된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싫은 점이 하나쯤은 있다. 누군가는 소심한 것, 누군가는 가끔 오바하는 것, 누군가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누군가는 감정을 표정에서 숨기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부끄럽게 여겨온 엉뚱하고 바보같이 구는 면을 그 어떤 누군가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면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도 괜찮겠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그 누군가처럼 자신을 바보같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아보인다는 것은 본질은 결국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보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주눅들지 않고 나를 가감없이 드러내려 한다. 아 물론 '적당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