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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우자 Nov 23. 2022

나의 수호천사가 떠났다


며칠전 나와 엄마는 집에서 피부 마사지를 받다가 갑작스레 요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나의 할머니가 숨을 더 이상 안 쉬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엄마와 이모들을 포함한 6자매를 어릴적부터 돌봐주고 손녀들의 자식들인 증손자들까지 모두 돌봐주고, 유일한 취미라고는 가족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하는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상태에서 콧줄로 간간히 연명하셨다. 며칠 전 할머니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던 것인지, 많이 힘드셨던 것인지 콧줄을 빼달라고 표현하셨고 얼마 지나지않아 곧 숨을 거두셨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본 할머니의 영정사진에도 할머니가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잘 안 났다.심지어 할머니가 차갑게 누워있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이전에 봤던 모습과 비슷하게 깊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관이 화장을 하러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정말 할머니가 돌아가셨구나, 마지막임을 느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죄송하고, 죄책감 느껴진다. 아마 우리 할머니는 자주 외롭고 서러운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다. 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친어머니가 아니었다. 외할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두고 1년만에 재혼한 본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안 사실은, 할머니는 애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기에 친자식이 없었고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증조할머니를 모시는 것은 할아버지가 아닌 장손녀인 우리 엄마였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나, 오빠, 언니 세 증손자들을 돌봐주었지만 할머니의 걱정 어린 말들은 철딱서니 없는 우리들에게는 모두 잔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자주 짜증을 냈다. 나이가 좀 들고 나서 뒤늦게 잘못을 깨닫은 후에는, 할머니에게 마사지를 해드리거나 내 나름대로의 잘 해드리고, '할머니 어릴 때 못되게 굴었어서 미안해'라고 목이 아파지는 말을 어렵게 꺼내며 죄책감을 덜어냈다. 할머니에게 잘 해야지 생각해도 곧 일상으로 돌아오면 할머니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늘 요양원 침대에 앉아 우리를 위해 묵주기도를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지켜주던 수호천사가 떠났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못 했던 것들이 떠오르며 후회된다. 1923년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직접 생생하게 경험한 할머니의 입으로 이야기를 직접 듣지 못한 것, 그 외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 후회된다. 요양원을 방문할 때 내 돈으로 직접 맛있는 음식을 사가지고 간 적 한번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할머니가 먹고 싶어할만한 것들을 사드리고 자주 뵈어 할머니를 덜 외롭게 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남아 계신 나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후회하지 않도록 잘 해야겠다. 특히, 평생 나에게 따뜻한 말만 해주고 사랑으로 품어주고 나를 돌봐주신 외할머니에게는 더 많은 효도를 해야겠다. 비록 할머니를 존중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미울 때도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은 식당에도 모시고 가고 여행도 더 자주 가야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제법 성인이 되어서 처음으로 겪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다. 슬퍼하는 내게 엄마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간 것을 슬퍼만 하지 않고, 평온한 곳으로 가신 것을 축복해드리며 좋은 마음으로 보내드리라고 했다. 할머니 어릴 때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었어서 미안해 혼자 오랫동안 외롭게 해서도 미안해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고 그동안 우릴 돌봐주고 기도해줘서고마워 할머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어 하늘나라에서도 계속 나를 지켜봐주시고 기도해주세요 나도 할머니가 원했을 소중한 하루를 너무 불평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 잘 살아가도록 노력해볼게. 할머니 그 곳에서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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