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흰머리를 사랑하는 방법
요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흰머리이다. 흰머리가 하나도 없을 20대 초중반 시절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나중에 나이들어 흰머리 생기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거야'라며 겪어보지 않은 자로서의 패기넘치는 호언장담을 했었다. 막상 흰머리가 많아지고 나니 그런 마음을 갖기가 여간 쉽지 않다.
생물학적 나이는 고작 31살인데 왜 이렇게 흰머리가 많이 나는 거람? 심지어 회사 퇴사 후에도 더 많이 나는 것 같다. 어느 정도로 흰머리가 많이 나냐면 두피를 여러 갈래로 갈라서 거울을 볼 때마다 흰머리가 하나 둘 씩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 갯수로 따지면 약 30~40개 정도는 될 것 같다.
이전에는 깊은 곳에 숨어서 나던 흰머리들이 이제는 가름마에 떡하니 자라고 있고, 뒷통수 겉부분에도 나고 있어 뒤에 있는 사람은 흰머리가 뻔히 보일 것이다.
유전적으로 흰머리가 많이 나는 건가 싶어서 4살 더 많은 우리 언니의 머리를 살펴보면 흰머리가 많아야 10개로 나보다 훨씬 적다. 게다가 오빠의 머리칼도 뒤져봤는데 이 오빠는 심지어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 (회사생활 편한가봐?)
이놈의 흰머리들 뽑으면 그 자리에서 더 많이 자란다고 하니, 짤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가위를 들고 흰머리들을 속속들이 찾아내 최대한 두피에 가깝게 짤랐다. 수십여개를 그렇게 하다보니 눈알이 아팠다. 그래도 흰머리가 모두 사라지고 나니 젊을을 얻은 마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러나 곧 이후 나는 이를 후회하게 되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흰머리가 잔디처럼 튀어나와서 자라나는 것이다. 머리카락 길이가 짧으니 직모처럼 자라 우후죽순 삐져나오게 되었다.
비록 흰머리로 인해 활력이 떨어져 보이고 젊음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뽑을 수도, 짜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염색은 귀찮고 돈도 아깝다. 앞으로 내가 나이가 들면서 흰머리는 더욱 생길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초심처럼 흰머리 좀 있으면 어떠냐는 마음으로 나의 흰머리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
극한의 컨셉충인 나에게 흰머리는 깊이 고뇌하는 사람인 척, 생각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해주기도 하고, gray hair라고도 불리는 흰머리를 현미경으로 보면 투명하다고 한다.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신비한 투명머리라고 여겨봐야겠다. 이상 자기최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