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나가지 않고, 별 일 하지 않던 백수시절에도 해야 하는 것들은 나름 해왔다. 하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방에 청소기를 돌린 것이다. 또 하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샤워를 한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스스로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공간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내 방이 정리가 좀 안 되어있는 걸 그냥 넘어가려 해도 나의 무의식은 정리정돈이 안 된 환경을 신경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간을 단정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기분 관리에 도움이 되고, 하다못해 공간이 그렇다면 내 몸뚱아리의 청결은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겟나.
우울함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우울할 때에는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거다. 말 그대로 우울함이 수용성일리는 없고, 스스로의 몸이 정돈되면 스스로의 처지에 대해서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조금이나마 얻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머리가 지성이라 머리를 감은 다음날 아침이면 금새 소위 떡이져있다. 거울 속 비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매우 찝찜해진다. 샴푸로 머리에 거품을 내어 두피 사이사이를 손가락 끝으로 개운하게 씻고서 뽀송한 스스로를 보면 기분이 많이 나아진다.
꾀죄죄한 나의 모습을 보아도 당장 씻는 일 자체가 귀찮아서 나중으로 미룰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침대에 누을 때도, 안마의자에 머리를 기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왠지 찝찝하다. 빨리 씻지 않으면 이렇게나 불편한 게 많아진다.
반대로 부지런히 씻고나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 개운하게 씻고난 상태에서는 하루의 계획을 다이어리에 꾹꾹 적으면서 기분이 더욱 좋아지게 된다. 또 갑작스레 지하 주차장의 자동차에 내려갈 일이 생기거나, 택배를 보낼 일이 생긴다거나 하는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도 바로 신발을 신고 나갈 수가 있게 된다. 씻지 않은 상태라면 외출해야 하는 일들을 기어코 나중으로 미루곤 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여 스스로를 깨끗히 정돈했다면 바로 외출하고 할 일들을 해결해 마음이 가뿐햇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귀찮아도 샤워를 하고, 내 방에 청소기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