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쾌했던 영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로 유명한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의 신작 <스파이 지니어스>는 유아독존 최고의 스파이 '랜스'가 빌런 '킬리언'의 함정에 빠져, 그가 소속되어 있던 스파이 에이전트를 도망쳐 나와 천재 연구원 '월터'로 인해 비둘기가 되는 내용이다. 이렇게만 쓰니 B급 개그 영화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지만, 영상미나 연출 방식, 내용 전개와 결말까지 크게 흠잡을 것 없이 재미있는 영화였다.
먼저 영상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영화 전반적으로 쨍하고 원색적인 색감들이 주를 이루는데 어느 장면도 색끼리 충돌하지 않고 잘 어우러져 보기 불편하지 않고 아름다웠다. 날씨가 맑고 해가 쨍한 브라질이나 이탈리아의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과 최종 결투 장면에서 알록달록한 연기가 터질 때 특히 그랬다.
또한 베니스나 최종장의 폐허 배경 등은 실사 이미지와 합성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잘 구현해서 배경을 볼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출에서 감탄한 점은 주로 코믹한 장면이었다. 빠르게 대화가 오가거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그 특유의 정적인 장면을 반복해서 끼워 넣어 웃음을 유발했다. 또한 보는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런 장면이 잦아지자 오히려 그것이 쌓이면서 더 큰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나 한국과 관련된 요소가 나올 때가 가장 어이가 없으면서 가장 웃겼는데, 월터가 한국 드라마를 애청하는 장면을 시작으로 마지막 월터와 랜서가 다시 만나는 감동적이고 중요한 장면을 한국 드라마 더빙 사운드로 웃기게 연출했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이 와중에 한국어 더빙이 꽤 잘 된 것에서 또 한 번 감탄했다.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주연과 주조연 캐릭터의 디자인을 특성 있게 잘 만들고 그 외의 조연이나 엑스트라의 캐릭터는 어디선가 본 듯한, 흔한 외관으로 만들면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더욱 돋보이게 제작했다고 생각한다. 각각 캐릭터들의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성격들도 겹치지 않게 재미있고 독특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는 월터의 성격이 가장 눈에 띈다. 모든 캐릭터가 다 특이하고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월터가 제일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월터는 초반에 랜서가 비둘기가 되는 과정에서 랜서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당연한 과정으로 여기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브라질에서 마시 일행을 피해 창문 밖으로 뛰려 했을 때도 두려워하던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기초 물리학에 꽂혀 머릿속으로 본인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시뮬레이션해 본다. 랜서가 비둘기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때 아쉬워하는 건 자신의 실험에 대한 데이터를 더이상 모을 수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월터는 랜서와 한 팀이 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이 빌런에게 당하지 않도록 적진에 뛰어드는 모습도 보여준다. 적들을 처치하는 방법 역시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닌 반짝이와 고양이로 정화(?)하려 한다.
월터는 혼자서 모들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랜서에게 세상은 혼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그것은 월터가 정서적 유대감을 갖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월터는 그저 초긍정주의자일 뿐이고 모두의 행복을 바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이 아닌 포용하려는 월터의 방식으로 내용이 진행되었고 랜서와 한 팀이 되어 함께 '별난 팀'이 되었다. 월터는 부정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닌 그저 조금 다른 '별난 놈'일뿐이었던 것이다.
영화 소개에 월터가 새가슴이라고 되어있지만, 솔직히 몰래 랜서의 임무용 도구를 바꿔치기하고, 비둘기가 된 랜서를 협박하고, 사사건건 랜서의 의견에 토를 달며, 자신이 개발한 도구가 얼마나 굉장한지 어필하는 월터가 '새가슴'이라고는 생각 못 하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월터의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시작은 월터가 어머니와 함께 등장하며 그의 성격이 어떠한 지,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떤지 보여주지만 그 후로는 랜서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며 월터의 어머니가 구체적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래서 월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후속을 예고했으니 다음 영화에서 다룰 수도 있겠지만 1편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이다.
개인적으로 2편이 나온다면 마시의 일행인 이어스나 아이즈의 이야기도 좀 더 많이 다뤄줬으면 한다. 강렬하고 특징 있는 캐릭터들인데 비중이 많지 않다고 느껴져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파이 지니어스>에서 또 한 가지 크게 다루는 내용은 바로 '비둘기'이다. 비둘기가 생각 외로 똑똑하다거나, 시속 142km로 날 수 있다는 등의 보통은 잘 모르는 비둘기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비둘기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연출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위험에 처한 월터가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있는 공간에서 빵가루 공격을 한다거나, 비둘기가 된 최고의 스파이 랜서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장면이라거나.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나 널리고 널린 비둘기를 소재로 사용하여 큰 재미를 준 것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비둘기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 나로서는 비둘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으나, 비중 있는 비둘기를 각각의 개성 있는 캐릭터로 표현하여 재미있는 장면들을 연출하면서도 내용 전개에 꼭 필요한 캐릭터로 만들었고, 비둘기를 크게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불쾌하게 보이지도 않도록 그 선을 잘 지키며 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제목에도 썼듯이 <스파이 지니어스>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였다. 평범한 코믹 액션 애니메이션 영화를 생각하고 보러 갔는데, 영화 내내 정말 많이 웃으며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