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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Feb 29. 2020

영화 <조조 래빗> 후기

영화 <조조 래빗> 메인 포스터 


영화의 스토리, 배경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본 영화였다.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하고 감독이 '타이카 와이키키'라는 정보만 알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토르: 라그나로크>의 감독이 '블랙 위도우'와 함께 작업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만든 이유였다. 심지어 그 감독이 꽤 중요한 역할로 출연한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고는 참으로 많이 당황했다.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말 '아돌프 히틀러'가 독재 정치를 펼치던 독일인 데다, 주인공인 '조조'는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던 히틀러를 신봉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조조 래빗> (조조)


조조는 그야말로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낳은 아이라고 할 수 있다. 10살 소년 조조는 유대인은 뿔 달린 괴물로 죽여마땅한 존재이고, 조조 본인은 독일제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고 싶어 한다.

조조는 동경하던 소년단에 입단하지만 토끼 한 마리 죽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조 래빗'이라고 놀림을 받게 되고, 수륙탄을 잘못 던져 결국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다리를 절게 된다.

조조가 갈망하던 소년단에서는 사실, 현대의 우리가 보면 온몸에 소름이 끼칠 교육을 진행한다. 아직 어린 남자아이들에게는 무기를 쥐어주며 전쟁에 나가 적을 죽이는 행위가 긍지 높은 일이라 가르치고, 여자아이들에게는 전쟁에 나갈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그녀들의 유일한 의무라는 생각을 주입한다.

어린아이들이 유대인은 인간과 다른 괴물, 세상에서 없애야 하는 존재이고 그것이 당연하다 교육받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무런 의구심 없이 교육받은 대로 행할 때마다 입안이 썼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큰 죄를 짓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조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 이미지 (로지, 엘사)


독일의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고 싶어 하던 조조의 어머니, '로지'는 죽은 딸의 방 벽면에 딸 또래의 유대인 '엘사'를 몰래 숨겨준다. 조조는 엘사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경계하며 적으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감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초반에는 큰 성과를 내어 히틀러의 신임을 얻고 싶은 마음에 엘사에게 접근했을지 몰라도 조조는 어느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엘사를 좋아하게 된다.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한 책을 만든다는 변명으로 엘사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물어보며 엘사의 남자친구가 쓴 편지인 듯 글을 적어 읽어주기까지 한다.

조조는 엘사를 만나면서 그동안 전혀 의심하지 않던 자신의 신념에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정말로 유대인은 뿔달린 괴물이 맞아요? 아니라면 유대인을 어떻게 구별하죠? 유대인은 정말 악한 존재인가요?

조조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엘사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결국 조조가 신념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간 데에 가장 큰 이유는 엘사였다고 생각한다. 계속되는 질문으로 조조는 한 단계씩 성장하고 남이 주입한 사상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정한 길을 걷게 된다.


영화 <조조 래빗>은 10살 소년 조조의 시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 독일의 상황을 보여주며 그의 이념이 변해가는 과정을 풀어나간다. 어쩌면 10살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사상에 더욱 물들기 쉽고 또한 잘못된 사상을 빠르게 바꿀 수 있었는지도, 그래서 감독은 10살의 조조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조의 이념이 변화하는 과정은 그의 상상 친구인 '히틀러'와의 관계에서 잘 드러나는데, 초반 조조가 히틀러를 동경할 때는 그가 힘들 때 옆에서 힘을 주거나 엘사를 만났을 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엘사가 괴물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히틀러와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마지막에 결국 히틀러를 창밖으로 날려버리며 뿌리박혀있던 이념이 완전히 깨지고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 이미지 (조조와 상상 친구 히틑러)



조조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어머니 로지는 사실 조조와는 정반대의 이념과 사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조조에게 전쟁 따위가 아닌, 삶을 즐기라 가르친다. 호랑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진 못했으나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던 로지. 더 이상 조조를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없게 되었으나 조조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미 로지가 남긴 자유의 씨앗이 심겨있었다. 그리고 엘사가 그 씨앗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 이미지 (조조와 로지)



엘사는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로지의 말처럼 엘사는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려 한다. 그러나 엘사 역시 큰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당연히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때 엘사가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즘을 동경하는 조조 덕분이었다. 좁은 벽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지옥 같은 상황이었지만, 엘사는 조조 옆에서 웃고 농담하고 장난을 칠 수도 있었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조조의 질문에 엘사는 출을 추고 싶다고 대답한다. 자유롭게. 그리고 마지막 두 사람은 집 밖으로 한 발짝 나와 자유롭게 춤을 춘다. 나치즘이라는 벽 속에 갇혀 살던 조조와 유대인이란 이유로 불합리한 사상의 벽에 갇혀 있던 엘사가 각자의 벽을 스스로 나와 자유가 된 순간이었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 이미지 (조조와 엘사)



감독은 나치즘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고, 전쟁의 무의미함을 말하지만 그 당시의 실상을 우울한 신파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블랙 코미디로 풍자하며 보여준다. <조조 래빗>의 장르는 코미디, 드라마, 전쟁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장르가 조화롭게 이루어진 잘 만들어진 영화였고, 지루한 예술영화가 아닌 즐겁게 보면서 길게 생각할 여운도 주는 좋은 영화였다.

나는 주인공인 조조를 중심으로 이 글을 썼으나, 로지나 엘사, 조조의 단짝인 '요키', 그 외에도 소년단을 총괄하던 '클렌젠도프'나 조조의 상상친구인 히틀러를 중심으로도 참 풀어나갈 이야기가 많은, 그야말로 영화가 끝나고서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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