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엔 뭐라도 될 줄 알 있지)
당신의 청춘은 어떠하였습니까?
"우기명은 청춘, 10~20대로 넘어가는 제일 뜨거운 순간인데 나는 이미 너무 차갑고 냉정한 나이 가되,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얘기를 그리나, 괴리감이 와서 못 그리겠더라..." 우기명을 놓아줘야 할 때가 왔다.
웹툰 작가 기안 84는 10년, 자신의 청춘을 모두 쏟아부었던 자신과도 같았던 웹툰 주인공 우기명의 마지막을 잘 보내주기 위해 33시간이라는 작업 시간을 걸쳐 보내주었다. 10년 동안 연재한 웹툰을 완결하고 자신에게, 우기명에게 고마움을 전하곤 "내일부터 뭐하지?"라고 헛헛하게 웃는 기안 84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림으로 인기를 끌면서 방송까지 출연한 기안 84, 인기와 부를 얻으면서 높아만 지는 관심들 속에 유명세를 치르면서,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 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기대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압박과 스트레스가 있었을지도 안다.
어떻게 보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상사 한 두 명, 크게는 사장님에게 혼나는 일을 기안 84는 몇백, 몇 천명의 상사들에게 혼나가면서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닌가 싶다. 악플 이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기안 84라고 생각한다.
나는 방송을 보면서 내 청춘시절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내 청춘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회사 - 집- 노동청이 다였다.
1년 반마다 회사가 망해 노동청을 가고, 회사 구하고, 회사 가서 적응하고, 적응하면 회사가 망하고, 월급도 못 받아 또 노동청을 가고... 1년 반마다 반복되는 악몽?이랄까,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내 청춘 시절이었다. 가끔은 이불 킥을 할 때도 있다...허허허허
그래도 나는 무언가에 내 청춘을 다~ 쏟아부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어뫄... 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웹디자이너 외길 인생 20년 차다. 허허허허...
내 청춘 시절은 디자인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다. 웹디자인을 하면서 내가 만든 디자인들이 사이트로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 좋았고 즐거웠다. 사람들하고도 잘 어울렸다. 자존감도 높았다...ㅋㅋㅋ 지금은 지하를 뚫고 내려간 자존감이 지상으로 올라온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디자인이 너무 하고 싶어 디자인을 많이 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과 기대감 같은 거?
그러나 직장생활이라는 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직장인의 비애...
기안 84가 웹툰을 매주 화요일까지 완결해서 보내야 하는 것처럼 나도 매주 금요일까지 기획전을 3~4개씩 만들어야 했고 중간중간 다른 일도 해야 했다. 월요일에 기획서를 받아 빠르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하고, 화요일엔 1차 시안 컨펌을 받고, 수요일엔 2차 시안 컨펌을 받고, 목요일엔 최종 시안을 만들어 금요일에는 넘겨줘야 했다. 최악의 경우 금요일까지 디자인이 나오지 않으면 욕 들어 먹고 주말까지 일을 가지고 가서 집에서 일을 했어야 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원했고 눈은 높아져 가기 때문에 나도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했다. 밥 먹으면서도, 출근하면서도, 퇴근해서도, 심지어는 잠자면서도 꿈을 꾸면서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했다. 일만 해도 부족한 시간들로 늘, 항상 초조하고 불안했다. 어쩌다 여행을 가거나 놀러를 가도 머리 한쪽으로는 늘 일 생각만 해야 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노하우가 생기면서 여유 있게 디자인을 마구 뽑아낼 때쯤, 그렇게 일을 해댔지만 그 화사 역시 망하고 말았다... 허허허허...
회사가 망했지만 여긴 그래도 삼 년을 다닌 회사였고, 디자인도 많이 배운 회사였다. 포트폴리오가 풍성해져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데 도움도 많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했던 나의 청춘시절 열정들이 모여서, 지금은 경력직으로서 어떻게 어떻게 연명해 가면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나는 지금, 처음으로 육 년째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전에 다녔던 회사들보다는 다른 분위기의 회사여서 야근을 하지 않아 퇴근 후 짬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생각하다가 팀장님이 그림을 다시 그려 보라고 하셔서 2016년에는 조카와의 일상을, 2017년에는 나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인스타부터부터 시작하였다.
그때는 조카를 키우면서 생기는 에피소들이 재미가 있어서 그림으로 그려놓으면 재미있겠다 싶었고, 그리다 보니 시트콤 같았던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싶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방문수가 적어도 상관없었고, 모르는 누군가가 댓글을 남겨주면 신기하기도 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사십 대가 가까워지자 나도 내 노후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다면 길면 2~3년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게 뭘까하다 어릴 적 꿈이었던 문방구 사장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뤄보고 싶었다. 내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손그림" 이 유행을 타면서 "굿즈"라는 용어가 생기면서 이쪽 업계는 과부하가 걸렸다. 잘하는 사람도 넘쳐나고,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나는 그렇다고 정말 특이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막 못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위치가 되어버렸다.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일이 업이 되다 보니 돈이 되지 않으니 내가 지금 그림을 그리고 왜 그리나 싶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그림을 시작한 분들 중에는 책도 내고, 광고도 많이 들어와 회사를 다니다 프리로 전향한 분들도 있었고, 인플루언서가 된 사람도 많이들 있었다.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꾸준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꾸준히만 하면 되는 게 아니였다보다... 솔직히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열심히 한 게 아닐 수도 있다. 허허허허
내 그림을 평가받는 건 "좋아요" 숫자나 "댓글"이지만 무플일 때도 많았고, 조회수가 많을 때도 있지만 좋아요나, 댓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기안 84가 최고의 악플은 무플이라고 하였다. 악플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기에 악플도 다는 거라고, 그러나 내 그림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띄워져도 클릭수는 많지만 댓글이나 좋아요 숫자는 늘지 않았다. 내 그림은 공감이 되지 않았나 보다...라고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광고가 들어온다고 해도 가격만 묻거나 무료로 이미지를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림 그리는 게 귀찮아지고, 그림 그려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생각도 나지 않아 요즘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다. 내가 그림을 올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수차례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지만 사십춘기를 맞이한 나는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만 하고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그림을 그만둘지, 자격증 공부라도 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다. 그래서인지 넋두리인지 뭔지 나도 모르게 글도 길어져 버렸다. 허허허허...
요즘 인플루언서다, 나를 브랜딩 해라, 유투버다, 뭐 다해서 돈 버는 방법으로 판 치는 세상에 나도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다 생긴 사십춘기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 내가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나혼자산다 기안 84의 영상을 보고 나는 내 청춘을 한번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열정이 없었는 줄 알았는 데 있었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답을 찾았나"라고 묻는다면 "아직도 못 찾고 있다". 이십 대의 열정은 못 따라가더라도 내 안의 사십 대 열정도 있을 거니까, 그 열정을 찾으러 떠나볼까 한다. 그전에 나빠진 건강을 다시 되찾고, 다시 시작해 볼 것이다. 건강해야 모든 할 수 있으니까...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래도 퇴근하고 나서 뭔가를 끄적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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