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엔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슝
내가 선택 한 길)
굴다리 터널을 울면서 걷고 난 뒤 나는 술을 끊었다.
진상 동료의 만행으로 택시에서 내려 택시 기사님에게 엄청 혼났고, 기사님은 세탁비로 현금을 요구하셨다.
다른 팀 과장님은 나에게 현금이 있냐고 물으셨다.
“난, 지금 5만 원 밖에 없는데 현금 있나?”
“아니요, 저는 현금은 안 들고 다녀서요.”라고 했더니
“돈이 없다고? 아니 왜 돈도 안 들고 다녀? 돈 없는 거 맞아?” 라며 물으며 나에게 짜증을 냈다.
진상 동료 대신 욕먹고 세탁비 계산해 야 하는 이 상황이 짜증 나는 건 알지만 ‘아니 왜 나한테 짜증이지?’
나도 지금 짜증 나고, 이 새벽에 뭐 하고 있나 싶고, 집에 빨리 가고 싶은데 돈 안 들고 다닌 다고 내가 왜 욕을 먹고 있어야 하지?‘ 참을 인을 꾸역 구역 새기며 나는 택시 기사님에게 명함을 드리며 현금을 안 들고 다녀서 죄송하다며 내일 꼭 저 진상 동료와 다시 찾아뵙고 세탁비를 드린다고 약속을 하고 보내 드렸다.
그 당시엔 핸드폰으로 계좌이체를 할 수 있을 때가 아니라 바로 드리질 못했다.
택시 기사님을 보내고 나는 주황 불빛의 굴다리 터널 안에 있다는 현실을 자각했다.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옆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새벽이라 차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정말 무서웠다.
토하고 나더니 술이 깬 진상 동료는 눈치를 보며 따라온다.
한 줄로 서서 굴다리 터널을 걸어가는데 무섭고, 집에 가고 싶고,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차는 지나다니고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차들이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고 우리를 조롱하는 말을 하고 지나갔다.
“야 택시에서 토하다 쫓겨났냐? 아하하하하하”
“야 너네 뭐 하냐!!”
태워 주지도 않을 거면서 한 마디씩 놀려대고 지나갔다.
울고 싶었다.
안 겪어도 될 일을 누구 때문에 겪고 있는 이 현실이 짜증 나고 무서웠다.
굴다리를 아직도 못 벗어나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 빵빵 거리면서 비상등을 켜고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19층!!!!!!”
왓씌!!!!!
같은 아파트 윗집에 사는 아저씨였다.
와- 씌 이런, 구세주를 만났다!!!!
아저씨가 차를 태워주셨다.
다른 동료 둘은 다른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에서 내려주고 아저씨와 나는 집으로 갔다. 집에 가면서 나는 눈물 콧물 흘리면서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구세주를 만나 겨우 집에 온 나는 새벽 3시쯤 도착해 잠 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했다.
나는 진상 동료를 나에게 맡긴 동료들에게 이제 회식은 없다며 술을 안 마시겠다고 선포하고 진상 동료를 데리고 택시 기사님에게 사과를 하고 왔다.
나는 그 뒤로 정말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 퇴근 후 동료들과 매일 마시던 술도 끊고, 팀 회식에는 참여하지만 술은 마시지 않고 밥만 먹고 나왔다.
간이 회복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술을 마시지 않다 보니 주량은 확실히 줄었다.
소주는 이제 냄새만 맡아도 취하고, 개그맨 유재석이 탄산음료만 먹어도 취한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는데 그게 내가 됐다. ㅋㅋㅋㅋㅋ
다른 회사를 가서도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컨셉으로 지냈다.
3년 정도 지나고 나는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술 한잔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술 먹고 누구 데려다줄 걱정 안 해도 되고, 시끄럽고 사람 북적대는 곳에서 이상한 술주정에 호응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나 혼자만 즐길 수 있는 혼술.
내가 좋아하는 거 먹으면서 조용히 한 잔 할 수 있는 이 분위기에 미소 짓는 혼술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