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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ug 24. 2016

사랑 앞에 갈팡질팡

그럴 땐 두 가지만 떠올려야지




종례를 마친 선생님은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곤 출석부를 정리하셨다. 그 모습에 몇몇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고, 내 심장은 쿵쾅쿵쾅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제 자리를 한 번 바꿔볼까? 이번엔 여학생이 남학생 옆자리에 가는 걸로 하자."



그날은 매달 꼭 한 번씩 치르는 ‘자리 바꾸기 날’이었다. 한 번은 여학생이, 한 번은 남학생이 자리를 바꿀 때마다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내야 했다. 당시 누군가의 옆자리를 내 발로 찾아간다는 건 '나 너에게 관심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건 생각보다 꽤 마음 불편한 일이었다. 고작 자리 한 번 바꾸는 소소한 일에 불과했지만, 그땐 그게 참 별 일이었다. 아무런 감정 없는 절친한 친구일지라도 그날만큼은 옆자리에 앉는 게 껄끄러웠다. 행여나 좋아한다고 착각하면 어쩌나, 좋아하는 걸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결국 눈치만 보다 꾸역꾸역 중간쯤 되는 자리에 앉았다. 제 발로 찾아가야 하는 우리도 우리지만, 기다리는 그네들 입장도 편치 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날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친구 옆에 앉았다. “너 좋아해서 여기 앉는 거 아니다”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고백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백 비슷한 걸 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도 몰랐을 아주 꼬마 때의 일이었다.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우리는 거의 매일을 붙어 다녔다. 특별한 놀이를 하지 않아도 종일 뛰놀았다. 그 시기에 찍은 사진 속엔 항상 그 아이가 있었다. 방 청소를 하다 우연히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날이 떠올랐다. 눈물을 참느라 코끝이 찡해지고 목구멍이 따끔거리던 날이었다.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멀리 이사 갈 거래."



그 친구는 언제고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겪는 이별, 그 말이 준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울상이 된 채, 엄마를 붙들고 이야기했다.



“엄마, 걔가 멀리멀리 가게 됐대. 이제 못 보게 될지도 모른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내게 엄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 친구에게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라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 친구에게 뭘 해주면 좋을까. 뭘 해줘야 이 아쉬운 마음이 잦아들 수 있을까.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클릭 몇 번이면 동창을 모두 찾을 수 있는 사이트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가입을 하려는 순간,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굳이 찾지는 않았다. 그냥 그때의 추억으로 남겨두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쪽지 한 통이 날아왔다. 바로 그 아이였다.



잘 지내? 초등학교 때를 떠올리면 항상 네가 먼저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다. 한국에서 학교 다니고 있지? 나는 아직 미국이야. 그때 네가 만들어줬던 자리 기억해? 시간이 지날수록 너희가 그때 서운해해주고, 아쉬워해줬던 게 고맙게 느껴지더라고. 마음은 그래도, 직접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서 더 기억에 남나 봐. 어머님도 잘 지내시지? 곧 한국에 들어갈 것 같은데, 괜찮으면 한 번 만나고 싶어.



‘네가 만들어줬던 자리’

그래. 그랬지, 참. 그 아이의 쪽지를 읽으니 생각났다. 엄마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송별회’ 였다는 걸. 헤어짐에 익숙지 않은 나와 같은 반 친구들이 못다 한 말을 전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나마 그 아이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네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고. 이만큼이나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그 자리를 빌려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나,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정성스럽게 송별회 초대장을 만들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커다란 상을 가득 채웠다. 그날은 오로지 그 아이 만을 위한 날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아이들은 집에 갈 줄 몰랐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친구들도 그날만큼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했다. 그 모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같았다. ‘우리는 널 좋아해’라고.



"그래서 그 애 만났어?"



테라스에 앉아 그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계속해서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결국은 못 만났는데, 그렇게 여러 번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왜 그때처럼 표현하고 살지 못하는 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어떻게 표현할까 보다 어떻게 숨길지 고민했던 것 같아. 들키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이야.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도 잘 몰랐던 그 어린 나이엔 오히려 숨김없이 다 표현했었는데. 지금의 나보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내가 훨씬 나은 것 같아."



'그 정도면 널 좋아하는 게 맞아’ '좋아한다면 그 정돈해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대화들이 흔히 오가던 20대 초반. 이상하게 그때의 일이 자주 떠올랐다. 좋아하는 감정이란 게 어떤 건지 정확히 답할 순 없어도 어린 날의 우리는 무척이나 솔직했다. 재보려고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남녀 사이든 친구 사이든 우리는 그랬다.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 사람에게 어떻게 이 마음을 표현하면 좋겠니?"



나는 누군가를 향한 복잡한 감정에 갈팡질팡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고민의 해답을 찾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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