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헤픈 시절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나도 한 번쯤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한 달쯤 지나고 나니 만나는 사람마다 비슷한 질문을 해왔다. 둘 사이 맞지 않는 건 뭐냐고, 연애할 때보다 많이 다투진 않느냐고. 치약은 중간부터 짜는지, 휴지는 어느 방향으로 꽂아두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싸움의 원인이 되진 않느냐고 물어왔다. 옆에 있던 3년 차 유부남은 너무 뻔한 질문이라며 그건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해하고 사는 거라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정말 그런가.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건가. 어쩌다 다투게 되더라도 각자 떨어져 생각해볼 집이 없다는 게 염려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맞는 부분이라곤 달랑 입맛 하나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와 내가 다른 면이 많은 사람이라는 건, 각자의 하루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안다. 그가 숫자로 빼곡한 엑셀을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요즘 핫하다는 영상들을 돌려보고, 그가 최대한 심플한 단어들을 골라 기획서를 쓰는 동안, 나는 사람들이 새롭다고 느낄 만한 문장들을 찾기 위해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언뜻 보면 지구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은 우리는 같은 업계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다. 그래서 서로를 눈여겨보게 된 건지도 모른다. 만나면 만날수록 궁금한 구석이 많아졌다.



여느 연인이 그렇듯,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어떤 일을 할 때 주변을 까맣게 잊은 채 온통 집중해버리는지, 어떤 것만큼은 못 견디게 싫어하는지 각자가 만들어온 삶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고, 그러다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오직 자전거 만으로 전국 일주를 떠날 만큼 자전거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이라는 걸. 회사가 일찍 끝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어깨를 들썩이며 집을 나섰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재밌어할까. 헬스장 가서 할 것 없을 때 타는 게 자전거 아니던가. 그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싶었는지 어느 날 불쑥 내 키에 딱 맞는 자전거를 선물했다. 너도 타봐. 잡생각도 없어지고 얼마나 좋은데. 그는 헬맷을 씌워주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그를 좇아 달린 한강은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강 같았다. 어릴 적부터 지겹도록 봐온 풍경인데, 그날은 왜 그리도 달라 보였는지. 목적지가 있어야만 자전거에 몸을 싣던 내가, 아무 목적지 없이도 한참을 달렸다. 잠자코 쉬는 것만이 쉬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알려준 게 두 발 달린 물체였다면, 내가 알려준 건 네 발 달린 사랑스러운 생명체였다. 어릴 적부터 동물 한 번 키워본 적 없는 그는 우연히 강아지나 고양이를 마주쳐도 잠깐의 눈길조차 준 적이 없었다. 길가에 핀 꽃을 대하는 것과 비슷했달까. 아마도 고양이와 제대로 눈을 마주친 건, 우리 집에 놀러 온 날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당시 두 살이었던 나의 고양이는 금세 그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에 겁먹는 그를 보며 어쩌면 우리 셋이 함께 사는 일은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 주었다.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던 그는 함께 살게 된 날부터 매일 아침 고양이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길가를 뛰노는 고양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기묘의 입양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연락을 돌리곤 한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함께 살게 된 고양이가 머리를 비벼대도 세상모른 채 잠을 자기도 하고, 고양이도 나보다 그의 곁에서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둘이 서로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숨길 수가 없는데, 아마도 함께 자전거를 탔던 그날, 그도 분명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으리라.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 어느 순간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이 넓은 세상에 오직 그것만 쏙쏙 눈에 들어오는 순간, 단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신기한 느낌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것도 조금씩 늘어난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좋은 것들을 알려줄 수 있도록. 세상은 조금 더 헤퍼져도 좋을 만큼 예쁜 것들 투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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