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식품과의 전쟁

애주가와 애연가의 타협점 찾기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8월 19일. 이제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이 날, 남편이 담배를 끊겠노라 선언했다. 연애기간까지 더하면 5년 이상을 함께 해 온 우린 여전히 이 문제로 자주 투닥인다. 그때마다 그는 그럴 싸한 이유를 덧붙인다. 하나는 '그 자리에서 비흡연자들은 영영 모를 이야기가 오간다', 둘째는 '스트레스받는 순간에도 심신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만큼이나 끈끈한 게 흡연이라나 뭐라나. 나는 영영 경험하지 못할 일이니 아무리 들어도 납득할 수 없다. 다른 방법들도 충분히 많단 생각뿐이지만,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 있다. 남편이 음주 이야기를 꺼낼 때다.



20대 내내 나는 술을 달고 살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그 일이 끝났을 때도 나는 기어이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래야만 앞으로의 일들도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식상한 핑계일 수 있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행여나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더라도, 그걸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다 해도 술 몇 잔 기울이면 싹 잊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 맛에 사는구나'라는 애늙은이 같은 말까지 흘러나왔다. 밤새 마시고 골골 대며 출근해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또 술 약속을 잡았다. 이젠 입에도 잘 대지 못하는 소주가 그땐 왜 그리 좋았는지. 하지만 30대에 접어들고부턴 손에 꼽을 정도로 술자리가 줄었다. 그 이유의 80% 이상은 남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 다른 것보다 너한테 무슨 일 생길까 봐 그래.



하루는 남편이 평소보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술 취한 모습보다 더 끔찍한 건 행여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마음 졸이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숙연해져 버렸고, 넘치던 술자리를 큰 마음먹고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맥주보다는 커피를, 그렇게 차츰 생활패턴을 바꿔나갔다. 대신, 하루에 커피를 4~5잔씩 마셔대는 카페인 중독자가 되어버렸지만.



내가 음주량을 줄이는 동안, 남편은 일반 담배에서 전자 담배로 바꿨다. 전보다 덜 해로울 것 같아 좋아하던 찰나, 딱히 큰 차이는 없다는 기사를 보고 다시 한숨이 나왔다. 연애시절엔 담배 피우면 손 안 잡아줄 거라고 협박도 해봤지만,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찌나 관리를 잘하고, 손을 부지런하게 씻는지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였다. 그래, 8월까지만 기다려주자, 오죽하면 저럴까, 싶다가도 이따금씩 마음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가 술 취한 나를 볼 때의 마음처럼 남편이 담배를 들고 집 밖을 나갈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진다. 애연가라면 자주 망각하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평소엔 담배 냄새가 싫다며 툴툴거려도 사실 남편이 담배를 끊어주었으면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재밌게 살고 싶어서. 이 마음에 비하면 다른 이유들은 너무도 사소하다.



8월에는 부디 좋은 변화가 찾아오길. 애주가인 나에게도, 애연가인 남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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