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시간, 각자의 공간

취미란 게 생겼습니다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시작하고 각자의 생활패턴을 어느 정도 파악한 시기, 남편이 내게 넌지시 말했다. 넌 취미란 게 아예 없는 사람 같다고. 취미?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취미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알았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한다면 취미로 봐도 되는 걸까. 자주는 못해도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푹 빠질 수 있다면 그것도 취미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나는 제대로 된 정의조차 못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나완 달리 남편은 꽤 많은 종류의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당시엔 자전거와 복싱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오죽했으면 몇 달 지나지 않아 체중이 5kg이나 줄어들었다. 한 번 재미를 붙이면 무섭게 빠져드는 것도 그의 취미라면 취미였다. 그런 그에게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이 내겐 없었다.



그날 남편이 처음으로 ‘글쓰기’를 권유했다. 메모하는 걸 좋아하니 주기적으로 글 쓰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한 두 줄 적어놓긴 하지만, 그걸 주기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으로 다가왔다. 뭐든 금방 싫증 내는 내가 꾸준히 글쓰기씩이나 되는 걸 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한 번은 커녕 한 달에 한 번 쓰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출근길에 열 페이지씩이라도 책을 읽자던 다짐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취미는 일부러 만드는 게 아니라, 어쩌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은 시무룩해진 나를 보며 빙긋 웃더니 며칠 뒤 선물 하나를 건넸다. 들고 다니기 좋은 노트북이었다.



아마 그날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나의 취미는 '글쓰기'인 지금, 그 순간을 떠올리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글쓰기란 게 언제 이렇게 내 삶에 깊숙이 들어온 건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그때 만약 내 앞에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면 어땠을까 자꾸 곱씹어보게 된다. 여전히 출근길에 책 열 페이지를 읽겠노라고 매번 같은 책을 꾸역꾸역 갖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건넨 노트북을 들고 처음 집 앞 카페에 들어선 날, 나는 그 날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날수록 차차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처음엔 1시간이던 게 2시간이 되고 어느새 시간을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오래 머무르는 날도 잦아졌다. 나만의 자리가 생겼고 나만의 시간이 늘었다. 이젠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움직인다. 의식하지 않아도 쓰고 싶은 글이 떠오른다. 그 시간이 너무도 귀하게 여겨진다.



남편은 요즘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골프와 산다. 평일 밤에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잠이 들고, 주말 아침이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스크린 골프장으로 향한다. 혹자는 주말마다 골프장에 가는 게 서운하지 않냐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무엇보다도, 들뜬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3~4시간 정도 더 잠을 잔 후에 노트북 챙겨 집을 나서는 내가 무척 마음에 든다. 그렇게 각자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동네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어떤 게 즐거웠는지, 오늘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취미란 걸 모르고 살던 나도, 오래도록 각자의 시간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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