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액션의 방식

화성에서 온 남편, 금성에서 온 아내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밥 잘 챙겨 먹었냐, 오늘은 뭐 먹었냐, 질문을 거른 적 없는 남편이 오늘따라 잠잠했다. 오후에 미팅 간다고 했었던가. 아직 밥도 못 먹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짤막한 문자가 날아왔다.



'아, 나 사고 쳤다!'

남편과 비슷한 업계에 있는 터라 별다른 설명 없이도 몇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릴 수 있었다. 온에어 될 소재 문제? 광고주와의 트러블? 현장 컴플레인?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일이 꼬이면 머릿속이 새하얘져 얼음이 되어버리는 나는 '사고'라는 단어에도 반짝 긴장이 됐다. 괜찮아? 수습되는 선이야? 실수 잘 안 하는 사람이 어쩌다 그랬대. 답답한 마음에 두 세줄의 문장을 적어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짤막한 답장이 도착했다. 내가 나중에 연락할게.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불행히도 나는 그 문자를 보는 순간부터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 일을 다시 이야기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우리는 집 근처를 산책 중이었다. 다행히 그날의 사고는 두세 시간 안에 수습됐고, 남편은 곧바로 '잘 해결했어!'라는 문자를 보내왔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과정이 불편했던 기억이 났다.



- 나는 일이 터졌을 때 괜찮냐고 위로해주면 더 힘이 나고 좋던데. 안 그런가?

- 음. 나는 잘 해결하고 오라는 말이 그 상황에 더 도움되는 것 같아.

-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그럼 좀 서운하지 않나?

- 서운하긴. 신경 안 쓰이게 배려해주는 건데.

- 그럼 해결될 때까지 가만히 있어주는 게 좋은 거야?

- 응, 나는 그게 더 고맙더라고.



그제야 그때 상황이 왜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따금 서로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위로받고 싶은 방식으로 남편을 위로했고, 남편 또한 그러하다는 걸. 그 상황에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을 택하기보단, 내가 받아왔던 위로 중 가장 고맙게 느꼈던 방식을 택한다는 걸. 사고가 터진 그날, 나는 수습보다는 남편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싶었다. 남편은 일을 빨리 수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길 바랐다. 어떤 방식도 틀리다고 볼 순 없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사고 하나를 크게 쳤다. 남편은 부지런히 괜찮냐고 물어줬고,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만약 남편이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이제 잘 해결하고 오라는 말과 함께 잠자코 기다려줘야겠지. 이왕 해줄 리액션이라면 그가 원하는 방식인 게 훨씬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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