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에서 셋이 된다는 것
어느덧 친구들의 1/3 이상이 부모가 되었다.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아이를 둔 친구도,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 배가 불러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저 아이가 정말 내 친구 아이가 맞나 깜짝깜짝 놀란다. 내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보다 함께 웃고 떠들던 모습이 익숙한데. 둘이 아닌 셋이 함께인 모습이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올 때면 훌쩍 지나간 세월을 정통으로 맞는 기분이다. 그 시간 동안 나와 내 친구들은 얼마나 다른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그저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곧 결혼 3주년을 앞둔 나지만,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진다.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아이 가질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 결혼하고부터 지금까지 내 반응은 달라진 적이 없었다. 주변으로부터 너희를 똑 닮은 아이를 보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네, 그럴 거 같긴 한데..'를 시작으로 매번 말꼬리를 흐렸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줄 행복보다 내 안에 준비돼 있어야 할 책임감이 버거웠다. 나로 인해 태어날 생명이 별 탈 없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보다 확실한 건 나는 이 만큼의 걱정거리를 안고도 이 일을 감행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과, 그렇다고 해서 '우린 둘이서만 살겠어!'라고 마음먹을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 엄마, 엄마는 왜 우리를 낳을 생각을 했어?
어느 날 불쑥,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책임감 강한 엄마 말을 듣고 나면, 어느 한쪽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엄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 너희도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어서 그랬지. 근데 가끔씩 세상이 너희를 속상하게 할 때면 너무 미안해져. 괜히 태어나게 해서 마음고생 시키는구나 싶어서. 엄마는 너희가 세상 사는 게 재밌어서,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고 느꼈으면 좋겠으니까. 매일매일이 그랬으면 좋겠으니까.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예민하고 고민 많은 성격이라 조금 힘들기는 해도, 내 뜻대로 흘러가 주지 않는 세상이 가끔 밉기는 해도 태어난 걸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도 이 세상은 꽤 살만하다고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나는 엄마의 말속에서 그동안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아이를 갖고 싶어서, 라는 말로는 늘 충분하지 못했다. 그것만으로 엄마가 되기엔 결심이 서지 않았다. 다만, 결심으로 이어질 생각의 변화는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그래서 너도 꼭 한번 살아봤으면 해서 너를 낳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날이 온다면 나도 엄마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책임감이 주는 부담의 크기보다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꼈던 순간순간을 누군가도 겪길 바라는 마음의 크기의 더 커진다면, 나는 분명 엄마라는 이름에 한 발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