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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30. 2018

지인 혹은 친구

노력 없는 친구 관계는 없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 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정도 나이, 이 정도 연차가 되면 친구보다 지인이 더 많아진다고. 그 말을 할 때면 다들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요즘의 내가 꼭 그렇다. 친구라고 하기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고, 모른다고 하기엔 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은, 하지만 친하냐는 물음에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먼저 떠올려보게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매해 부지런히 늘어난다. 때론 그 사람들이 오랜 친구들의 자리를 하나 둘 메꿔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결국은 같은 업계의 지인들만 남게 돼있어. 억지로 찾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소재가 있으니까. 친구 사이에 못 보는 것도 정도껏 못 봐야지, 너무 오래 못 보면 할 말이 없어져버리거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장생활 2년 차에 접어들 무렵, 나보다 두 배쯤 연차가 높았던 선배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 회사에 머무르던 몇 개월 동안, 선배는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일만 했다. 시간이 생기더라도 근처에 있는 같은 업계의 사람들과 만날 뿐, 오랜 친구들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어지는 스케줄을,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친구들은 잘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던 친구들과는 이제 반년에 한 번 시간 맞추기도 어려웠고, 아예 부르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기를 여러 번, 언제부턴가 여유가 생기더라도 선뜻 만나러 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아마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침묵을 견뎌야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걸 실감하게 될까 봐서였으리라. 



그 말을 들은 그때, 나는 두려웠다. 가까운 미래에 나도 그렇게 될까 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관계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좋은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 관계만 남게 될까 봐.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선배는 시간적인 부분에 있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은 눈치 보지 말고 미리 말하라고, 바쁘더라도 만나야 할 친구들은 부지런히 만나라고 했다. 내가 다른 회사를 가게 되었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을 때에도 선배가 마지막으로 한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만 하지 말라고. 친구들 다 떠나고 후회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들은 지도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다. 함께 지내던 건물을 지날 때마다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바쁘겠지, 라는 생각에 여러 번 만남을 미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같은 업계에 있다는 걸 어디선가 전해 들었는지 반갑게 근황을 물어왔다. 그의 생활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한 가지 희소식이 있었다. 마음속에 있던 사표를 정말로 내고 왔다는 것.



"아직 계획은 없어. 일단, 친구 가게에 가보려고. 진짜 친한 친구인데 맨날 팔아준다 팔아준다 말만 하고 지키질 못했어. 그래도 그놈이 자주 전화해준 덕에 이 정도 관계도 유지된 거지. 잊을 만하면 전화해서 뭐하냐, 밥은 먹냐, 물어줬었거든. 그거라도 없었다면, 그저 그런 지인으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했지만, 선배는 그다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일들을 짚어보며 갚아야 할 것들을 하나씩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조금의 여유도 없었던 그때,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애정을 보내주었던 사람들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서면서. 내가 크게 노력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별 탈 없이 유지되는 관계가 있다면, 상대방이 그만큼의 노력을 더 해주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 친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전보다 부쩍 줄어든 듯한 요즘, 나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떠올린다. 행여나 멀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꺼이 다가와준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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