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G ISSUE KOREA 202
솔직히 말하면 저는 환경보호에 크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닙니다.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그 심각성을 느끼긴 하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아요. 대자연보다는 드높은 빌딩을, 밤하늘의 별보다 도심의 야경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합니다. 자연 앞에 감탄하긴 하지만 그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거나 훼손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자연은 그저 자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내 일인 적 없는 ‘환경보호’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갖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2019년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광고주인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의 신규 캠페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본사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캠페인 테마를 전달받았고, 지금까지도 그 영상을 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23초 안에 담긴 비주얼과 카피는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빙산의 모습이 일회용 봉투로 돌변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라 그 뒤로도 여러 번 영상을 돌려봤던 기억이 납니다. 국내에서도 같은 결의 캠페인을 진행하면 좋겠다는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날부터 우리 팀은 ‘PLASTIC OR PLASTIC’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각자 아이디어를 내는 데 몰두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고 난 플라스틱의 12%만이 재활용되고 있으며 매년 9백만 톤의 일회용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만 매일 5억 개의 플라스틱 빨대가 사용된다고 하니 자료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제야 여러 번 스쳐 지나갔음에도 크게 관심을 둔 적 없는 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22kg의 플라스틱을 삼킨 채 죽음을 맞이한 향유고래와 코에 들어간 플라스틱 빨대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던 바다 거북. 조금만 눈여겨봤다면 ‘PLSTIC OR PLANET’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을 텐데, 저는 매번 보기 괴롭다는 이유로 무심히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니 왜 카페에서 평소 하지 않던 종이 빨대 쓰기와 일회용 컵 줄이기에 관심을 두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하루에 4~5잔씩 커피를 마시는 저 같은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 한 번쯤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인쇄 광고가 말해주는 것처럼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이 담배만큼 해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편리함’과 ‘깔끔함’이라는 착한 탈까지 쓰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겠지요.
아쉽게도 얼마 전 국내에서 온에어 된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광고에는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여러 번 보고를 거치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철학만을 담자는 의견으로 좁혀지게 되었어요. 아직까지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저는 이번 캠페인을 무척이나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여전히 쓰면 쓸수록 눅눅해지는 종이 빨대와 텀블러 세척에 불편함을 느끼지만, 이런 자그마한 실천이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걸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말할 것도 없이 달라진 저를 발견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 때면, 바다 위에 빙하가 순식간에 일회용 봉투로 변하던 영상 속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마음을 다잡는 데 꽤 효과 좋은 처방약인 것 같아요.
PLANET OR PLASTIC?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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