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생각나는 엄마표 국수
일요일 낮 12시. 몸은 아직 이불속에 있지만 마음만은 분주하다. 주말은 항상 이렇다. 토요일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감겨오는 눈과 매번 사투를 벌인다. 어제는 새벽 2시가 조금 넘어서야 겨우 잠든 것 같다. 분명 가족 모두 토요 명화를 보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방문 밖에선 벌써 각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엄마는 연신 도마질을 하는 중이고, 아빠와 언니는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말과 말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길 때면 아빠가 신문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바이오리듬이 비슷한 남동생은 분명 기상 전일 것이다.
그렇게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한참 귀 기울이던 나는 일어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저녁까지 이어지는 야간학습과 학교가 끝나자마자 달려가야 할 미술학원. 왜 입시를 전쟁에 비유하는지 요즘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부쩍 예민해진 선생님들과 그에 반해 제자리걸음 중인 실력. 치열해도 너무 치열한 평일을 생각하면 2시간쯤은 더 누워있어도 될 것 같은데. 그 순간, TV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국노래자랑!”
아,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 할 타이밍이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연다. 그러자 진한 멸치국물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식탁 앞에 서 있는 엄마는 면이 잘 익었는지 냄비 안을 휘휘 저어보고 그럴 때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그 모습에 쏟아지던 잠이 달아난다. 어쩌다 한 번 먹는 음식도 아닌데, 일요일이면 당연하게 먹는 나의 첫끼인데 매번 처음 먹는 음식처럼 신이 난다.
“자, 어서 와서 앉자.”
엄마의 한 마디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착석한다. 나는 싱크대로 걸어가 수저 5쌍을 골라낸다. 짝이 맞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고 각자의 앞에 가지런히 놓는다. 아빠는 가장 중앙 자리, 엄마는 늘 아빠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는다. 언니는 엄마 옆에, 나는 아빠 옆에 앉는다. 내가 맡은 임무를 모두 끝내고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동생의 방문이 열린다. 까치집 머리를 한 동생은 눈이 퉁퉁 부은 상태고, 엄마는 그런 동생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준 후 각자의 양에 맞춰 면을 나눠준다. 그 위에 진한 멸치국물을 붓고 파와 고추가 송송 썰려 있는 간장을 원하는 만큼 넣고 나면 엄마표 국수 완성! 재료는 같아도 다섯 개의 그릇에선 전부 다른 맛이 난다. 나는 내 방식대로 만든 첫 그릇을 국물 한 방울 없이 깨끗이 비운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첫 번째 단계로 돌아간다. 다시 면을 놓고 국물을 붓고 간장을 넣는다.
그러는 동안, 전국에서 끼 좀 있는 이들의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온다. 출연자의 캐릭터에 따라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나른한 오후까지 우리의 식탁은 내내 고소하고 따뜻했다. 나는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그 시간 속에서 매번 같은 것을 느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이 국수 한 그릇이 분명 그리워지는 날이 올 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