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직구를 던져야 할 때

돌려 말하기의 종지부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솔직한 내가 한때는 돌려 말하기의 달인으로 살았던 적이 있다. 반대되는 의견을 말해야 할 때나 불편한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때, 나는 그때가 가장 곤욕스러웠다. 상대방이 기분 상하면 어쩌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면 어쩌나 신경 쓰다 보면 알아듣지 못할 만큼 애매하게 말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굳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일은 없었다. 그러려니 했다. 돌직구로 인해 불편해진 공기를 견디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문제는 내 마음이 딱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말하지 못하면 못하는 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대로 받아들이면 좋은데, 저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은 달랐다. 나랑 가까운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키우지 않아도 될 서운한 마음을 키우기 시작했다. 불만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겉으로 잘 꺼내놓지 못하는 나. 그런 나를 이해해주는 게 진짜 애정이라고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표적이 된 건 남편이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또 어떨 땐 가장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희한한 존재. 이런 생각은 대부분 남편의 말에서 비롯됐다. 돌려 말하기를 모르는 그의 성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의도는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에 콕 박히는 말들이 꽤 많았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상황을 맞닥뜨리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한동안은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미묘하게 달라진 공기만 있을 뿐, 나는 제대로 말을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으면서 서운한 티는 내고 싶은 이상한 마음. 그 순간만큼은 평소의 내가 아닌 100%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토라진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니 거의 3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응, 알겠어.'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에서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서운해.'라고 말하기까지 말이다. 나는 그동안 '상대방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이 곧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다르다고 말하는 게 상대방을 부정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닌데, 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나쁜 사람이 되는 일도 아닌데.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어주길 바라기보단 내 마음 상태를 확실한 언어로 전하는 것.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열심히 실천해보려고 한다. 나와 가까운 사이라면 더더욱.




이전 08화어쩌면 무모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