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그렇게
올해 들어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방문할 곳이 생기면 인터넷으로 미리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것. 미리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시간을 묻고 입장 여부를 확인하는 것. 여행 일정조차 헐렁하게 세우는 내가 이런 계획적인 생활을 하게 되다니. 마음이 꽂히면 무작정 찾아가는 버릇 탓에 휴무일과 겹치는 경우도 많은데, 워낙 자주 있는 일이라 '운이 나빴네' 생각하며 금세 다른 집을 고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언제 다시 문을 열지 모를 가게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기에.
집 근처 꽃집에서 확진자가 나온 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올여름,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지인에게 화분을 선물하기 위해 들른 곳이었다. 빼곡한 화초 사이를 바삐 지나다니는 주인 아주머니는 한눈에 봐도 무척 부지런한 분 같았다. 내가 고른 스투키를 큼직한 화분에 옮겨 담으며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절대 못 사"라며 몇 번이고 강조하셨던 기억이 났다. 나는 또 오겠다고 했지만 다시 찾은 적은 없었다. 그 꽃집은 아직까지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꽃 살 일이 없는데도 자꾸만 그 가게에 시선이 머문다. 천막 사이로 비집고 나온 화초들이 눈에 밟힌다.
지난주 퇴근길, 주기적으로 운동화 세탁을 부탁드리는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매번 그분께 연락을 드리게 됐다. 평소 같았다면 10분 만에 답이 왔을 텐데,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아 의아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게 되는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죄송합니다. 지난달에 저희 영업 종료했어요. 그 안엔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어쩌면 다른 일을 시작하신 걸 수도 있겠지.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답장을 써 내려갔다. 죄송했다. 더 자주 찾지 못한 내 탓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제 점심엔 회사 근처 초밥집에 들렀다. 생맥주 맛이 일품인 집이었다. 이 시간이면 꽉 채워졌을 테이블이 군데군데 비어있었다. 경쟁 PT가 마무리된 기념으로 생맥주를 주문했지만 먹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작동한 탓인지 생맥주 기계에선 거품만 뿜어져 나왔다. 종업원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은 후엔 커피만 사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평소 같았다면 30분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우리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각자 자리에 앉아 해야 할 일을 했다.
마스크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상. 9시면 하루를 마무리 해야 하는 일상. 확진자 수에 따라 사무실 혹은 집, 그 어딘가에서 완전히 멈춰지지도, 완벽히 계속되지도 않는 일상. 솔직히 말하면 무료했고 답답했다. 내게 주어진 열두 달을 100%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고. 하지만 어느새 많이 달라져 있는 주위를 보며 느꼈다. 버텨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견한 거라고. 그래서 '조금만 더'라는 말은 마음속에 넣어두기로 했다. 다만 잘 견뎌주기를. 그저 잘 버텨주기를. 지금 이 시간을 묵묵히 보내고 있을 모든 사람들과 아끼는 공간들에게 응원과 기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