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20. 2015

연락이 두절된 동안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연말이 되면 이번엔 누구 집에서 모이자, 2만 원 선으로 준비한 선물을 나눠갖자, 이야기가 나오는 대화창이 있다. 대학시절 내내 붙어다닌 동기들이다. 개강 첫날, 우연히 같이 점심을 먹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한 살 위 둘, 한 살 아래 둘, 그리고 동갑 하나, 참 사이좋게도 구성돼 있다. 그중 동갑인 친구는 좋고 싫음이 뚜렷해 때론 철 없이 굴던 나완 달리 한결 같이 어른스러워 닮고 싶은 면이 많았다.


전문적인 분야를 차근차근 배워가기 시작하면서 나의 장단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건 곧잘 했지만 뭔가를 만드는 수업에 있어선 정말 젬병이었다. 특히 패키지 디자인 수업은 매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치수가 안 맞는 건 기본, 내가 생각한 형태를 전개도로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웠다. 매 수업마다 흥미가 뚝뚝 떨어졌다. 성적이 나올 때쯤 되면 학과장님은 '다른 건 다 재밌어하면서, 만드는 게 그렇게 싫으냐~' 매번 말씀하셨다. 싫은 게 아니라요, 진짜 잘 안돼요, 패키지가 절 싫어하는 거라고요, 툴툴거리는 나완 달리 그 친구는 모든 수업을 골고루, 아주 착실히 들었다. 이름 세 글자를 들으면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런 아이였다. 거기에 심성까지 아주 고왔다. 세상에 대한 악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 세상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 그 친구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나 이거 너무 하기 싫은데 어떡하지. 아, 저기 저 잔디에서 짜장면에 맥주 한 잔 마시면 딱 좋겠다."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날도 나는 듣기 싫은 수업을 듣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같은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는 작업에 잔뜩 몰두해있었다. 한 면 한 면 차분하게 색감을 입혀가는 걸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더니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디서 그리면 잘 그려질 것 같아?'라고 물었다. 요기 합정 어딘가 카페면 좋겠다는 한 마디에 매번 무거운 재료를 들고 함께 가주었다. 음료 두 잔과 케이크 하나를 시켜두고 마주 보며 사이좋게 그림을 그렸다. 그 과정이 편안하고 즐거웠기 때문일까. 공모전에서 나란히 큰 상을 받았다. 유독 맑은 날씨가 계속됐던 그해 가을, 우린 무척 가까워졌다.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갈수록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지, 삶 전반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스스럼없이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곧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고, 모든 게 잘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졸업과 함께 친구는 디자이너로, 나는 카피라이터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졸업식날,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던 우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앞날을 마음 깊이 응원했다. 앞으로도 함께할 날이 많이 남아있으니 아쉬워말자고, 서로를 보며 웃었다.


졸업 후에도 여섯 명이 있는 대화방은 늘 시끌벅적했다. 편집 디자이너, 미술학원 선생님, 마케터, 승무원까지 전공은 같았지만 하는 일이 모두 달라 이야기의 소재가 전보다 훨씬 풍부해졌다. 회사 생활은 어떤지, 요즘은 누굴 만나는지, 근황을 나누다 보면 200개의 메시지가 금세 채워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도, 문자를 보내도, 전화를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럴 아이가 아닌데, 모두 의아해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답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아니, 어떻게 졸업했다고 이렇게 연락 한 번 없을 수가 있어."


한 살 위인 언니는 서운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리 못 봐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꼭 모이는 우리인데, 이제 다섯 명이 모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그래, 필치 못할 사정이 있는 걸 거야,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나 둘 서운함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자꾸만 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정말 졸업하고 나니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아진 건가, 싶은 느낌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우린 이런 얘길 나눴다고, 다들 이렇게 지낸다고, 늘 그렇듯 네가 참 보고 싶다고, 두 달, 네 달, 자그마치 1년 간 꾸준히 보냈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지만 버릇처럼 그 일을 계속했다. 언젠가는 돌아와주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허공에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지는 날엔 친구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함께 보낸 4년, 네겐 별 거 아니었구나, 나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가던 나는 핸드폰을 든 채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친구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1년 반 만에 받은 답장이었다.


[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고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보내 준 문자 다 읽어보고 있었어. 네 문자 받을 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만나고 싶어. 너만 괜찮다면 그때처럼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싶다. 괜찮을까? ]


응,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 우리는 곧바로 날짜를 잡았다. 늘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7호선 중간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학교 다닐 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눴던 그때처럼 그 아이는 그 자리에 듬직하게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쩜 그럴 수가 있어,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도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락이 두절된 동안 한 번의 큰 심장 수술, 한 번의 큰 좌절을 겪었다고 했다. 하나하나 세세히 듣진 못했지만 그 밝았던 얼굴에 처음으로 슬픔이 보여 차마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를 잊은 건 아닐까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게 너무 미안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고, 누구와도 연락하지 못했고 그게 계속되다 보니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나만 불행하게 사는 것 같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았는데, 그날 네가 보내준 문자를 받고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할 것 같았다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해해서 미안해, 잘 견뎌줘서 고마워, 나는 그 말만 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12월 둘째 주가 낫겠지?"


이번 주, 연말 모임을 잡기 위해 다시 대화방이 시끌벅적해졌다. 올해는 우리 여섯, 모두가 모일 수 있게 되었다. 함께인 게 당연했던 그때, 나는 우리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매일 아침 만나는 게 당연했고, 매일 저녁 '내일 봐' 인사하는 게 익숙했다. 친구가 없었던 1년 반. 그리고 올해. 함께하는 시간이 늘 당연하게 주어지는 건 아니구나,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세상 어디에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건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지금 내 주위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너를 잃지 않아 다행이다.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고,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줘서 정말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트레이너에게 푹 빠진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