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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18. 2015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지난 3년, 편견에서 벗어난 시간


동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질색팔색 했다.


"싫어. 5분도 같이 못 있겠어."


떠안게 될지도 모를 대상은 태어난지 3개월도 안된 아기 고양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연약한, 안아보기에도 너무나 야리야리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양이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강아지에겐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면서 이상하게 고양이만 보면 눈을 피하고 몸을 돌려 버렸다. 원흉의 동물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어릴 적에 읽었던 어느 만화책에선 의인화된 고양이가 주변 인물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함께 있으면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또 어떤 이야기에선 고양이를 집에 들인 순간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는 으스스한 내용도 있었다.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꺼림칙한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싫어하는 건 아니어도 가까이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런 대상과 잠깐도 아니고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니. 나는 사색이 되었지만 '몰라, 네가 알아서 해'라고 대답해버리기엔 왠지 모를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럼 이 아인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자 미야, 미야, 자그마한 소리를 냈다. 그때 처음 고양이와 눈을 마주쳐봤다. 푸른빛과 노란빛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예쁜 오드아이였다. 고양이도 오드아이가 있구나, 그 사실도 처음 알았다. 흐음,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도 같고. 우선 이 연약한 몸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싶어 '아, 나중 일은 모르겠고 일단 알겠어' 대답한 후, 집 앞에 있는 동물 병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나 보네요. 예방 접종도 안 했을 거예요. 흔한 일입니다. 생명이 아니라 그저 사고파는 물건으로 본 거겠죠."


이리저리 살펴본 수의사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염려했던 것처럼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종종 이런 일이 있다고 했다.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를 넣어두고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은 채 분양하기에만 급급하다고. 데리고 간지 얼마 안돼 시름시름 아프면 돈 돌려달라,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가루약과 주사기를 챙겨주며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영양제를 잘 먹이라고 했다. 잠자는 동안 괜찮은지도 잘 살펴보라고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도 했다. 그럴 일 절대 없어요, 대답하고 나온 그날, 고양이에게 '하미'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귀신 좀 붙으면 어때, 지레 겁을 먹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있어 내 공간 안에 하미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가까워질 것인가, 그게 문제였다. 하미의 공간은 금세 꾸려졌다. 조금 떨어져서 어떻게 하나,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 쪼끄만 발로 총총총 걸어와 내 무릎에 기대앉았다. 그르릉 그르릉, 생경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또 어디가 아파서 그런 건가 싶어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좀 바보 같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란 걸 알게 됐다. 어설픈 폼으로 고양이를 안은 채, 어쩔 줄 몰라하는 날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게 고양이들이 교감하는 방법이에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배 쓰다듬는 건 싫어한다, 턱 부분을 쓰윽 긁어주는 걸 좋아한다, 그것 말고도 알아둬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뭘 조심해야 할지, 나도 모르는 사이, 온갖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됐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린 가족이 되었다.


이 자그마한 고양이로 인해 내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때때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거울 앞에 놓여 있던 화장품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기도 했고, 가죽 의자를 몽땅 뜯어놔 바닥 곳곳에 잔해들이 나뒹굴기도 했다. 어두운 계열의 옷이 많은 내게 하얀색 고양이 털은 치명적일 수 있었지만 사실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는 하미가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조금 칭얼대긴 해도 집에 돌아온 몇 분 동안은 꼭 안겨있어 주었고, 조금 까칠하긴 해도 꼭 머리맡에서 함께 잠들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내며 까끌한 혀로 얼굴을 핥아주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그게 없으면 허전할 정도였다. 고양이가 내는 그 기분 좋은 소리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인 것 같았다. 이따금씩 시달렸던 불면증도, 스트레스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눌렸던 가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귀신은 커녕, 온갖 나쁜 기운을 모두 쫓아주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미를 만난 후론 고양이라면 모-두 예쁘다.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길고양이와 만나게 되면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들여다보곤 한다. 한 번이라도 눈을 마주쳐보려 애를 쓴다. 그땐 저 예쁜 눈이 왜 그리 무서워 보였을까- 이젠 색안경이 아닌 안경을 들고 바라보게 된다. 구석구석 자세히, 더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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