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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Dec 21. 2015

엉뚱한 비수

때론 묵묵히 들어주기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유독 치부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있다. 오랜 세월, 혹은 힘겨웠던 한때를 함께 보낸 이가 아니면 어느 것 하나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 정작 당신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 정도로 나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상대방 머릿속에 그려진 내 이미지가 그대로 유지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던 것도 있었고, 나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 그 이미지가 깨져버릴까 두려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에겐 늘 사람이 필요했다.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저질렀을 때,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홀로 답을 내려놓고 아무리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해봐도 쉽사리 마음속에 들와주지 않을 때면 오랜 친구들을 찾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줄 사람들과 맥주 몇 잔 앞에 두고 3-4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쉴 새 없이 쿵쾅대던 심장이 어느샌가 고요해져 있었다. 그런 밤이 있었기에 모진 풍파를 견뎌낼 수 있었다.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대단히 많진 않더라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에 늘 감사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그런 확신.


지난주, 매번 그 확신을 심어주었던 친구들과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었다. 올해도 무탈하게 잘 지나갔으니 축하하자는 의미에서 만든 모임이었다. 평소보다 꽤 많은 인원이 모였는데 그중엔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몇몇도 섞여 있었다. 누구와 누구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사이였지만, 누구와 누구는 조금 멀고, 또 누구와 누군 아예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이기도 했다. 그들은 그동안 업데이트하지 못한 소식들을 차례로 털어놓았다. 2년 전쯤, 호된 이별을 경험한 한 친구가 자기 차례가 되자 나 아직 연애 쉬고 있어, 갈 사람들은 먼저 가라, 장난 섞인 말을 시작으로 근황을 털어놓았다. 나와 그 친구는 제법 자주 보는 사이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소개팅을 몇 번 해봤는데 마음이 쉽게 가지 않더라,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오히려 경계하게 되더라, 솔직하면서도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그때 반대편에 있던 친구가 문장과 문장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친절한 사람을 만나야지, 무슨 소리하는 거야. 너 이제 그만 상처받을 때도 되지 않았어?"


그건 분명 장난 섞인 말이었다. 행여나 또다시 상처받게 될까, 걱정돼서 한 말인 것도 잘 알았다. 그런데 아팠다. 당사자는 그러게 말야,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상하게 내가 아팠다. 그 시기에 그 친구가 지었던 표정이 불현듯 떠올라서이기도 했다. 2년이고 3년이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기 어렵겠다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그 상처를 잊게 해 줄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고 있었는데. 나는 친구의 표정을 살피기 바빴다. 마치 내 상처가 덧나기라도 한 것처럼.




- 아버지 문제에서 그만 벗어나면  안 돼? 너무  오래가는 것 같아.

- 오래 가? 내가 아버지랑 풀지 못한 얘기를 너한테 한 건 이런 식으로 공격하라고 한 말이 아니야. …됐다. 근데 한유주, 어떤 일이 사람 마음에 오래오래 갈 때는 그게 그럴 만 하니까 그런 거야. 괜히 그러는 게 아니고.

ㅡ 드라마 '커피 프린스' 中


시끌벅적한 시간이 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버리고, 나는 집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의 불빛들이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사이, 혼자 땅만 바라보며 걷고 있는 낯선 이가 눈에 들어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어딘가 힘겨워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하하호호, 웃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밀려왔다.


누군가가 그늘 진 얼굴로 다른 이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딱 하나인지도 모른다. '괜찮다'-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그 말을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듣고 싶어서, 해결책을 바라서라기 보단 오로지 그 말이 필요해서다. 그럴 땐 그저 괜찮다, 그 말이 모든 걸 낫게 했다. 그래서 아팠나 보다. 친구의 일에 마음이 아팠던 건, 순간적으로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치부를 드러냈던 그날, 그날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때의 내 상처를 아무런 동의도 없이 드러내 '이거 이제 그만 지워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처가 아물었건 아니건- 그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럴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어떠한 보호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달려온 누군가에겐 반듯한 말조차 비수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말이 엉뚱한 비수로 변해 또 다른 상처를 낳을 수도 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찾아왔을 땐, 피하고 싶은 상황을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묵묵히 곁을 지키며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상처 투성이인 그에겐 옳은 말보다 그저 따듯한 말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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