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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Nov 02. 2015

상처도 선택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방법


"상처받았다면 미안."


세상에 이토록 무책임한 말이 또 있을까. 난 이미 상처 투성이가 되었는데 돌아오는 말이라곤 꼴랑 이거  하나뿐이라니. 마음에 쿡쿡 박히는 말만 골라하던 그 사람은 늘 적당한 말로 상황을 무마시키곤 했다. 주위에서 아무리 '그 사람이 나빴네' 다독여줘도 소용없었다. 결국 상처받는 건 나, 감당해야 하는 건 나였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나는 상처받는 데 최적화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상처 줘야겠다 마음 먹고 덤빈다면 그 사람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상처받아 줄 사람이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모든 이에게 좋은 말만 듣고 싶어서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만, 마음 다치는 일은 생기고야 말았다. 왜였을까. 주변에 악연이 많아서?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상처받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모건 프리먼 인터뷰>

기자 : 내가 당신에게 ‘니그로 Negro(흑인을 비하하는 말)'라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프리먼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기자 :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프리먼 : 만약 내가 당신에게 ‘바보 독일 암소’라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기자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프리먼 :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기자 : 난 관심이 없으니까요.

프리먼 : 나도 똑같습니다.

기자 : 그건 일종의 눈속임 아닌가요?

프리먼 : 당신이 나를 ‘니그로 Negro’라고 부르면 문제는 당신에게 있지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관심을 끊어버림으로써 문제를 갖고 있는 당신을 혼자 내버려 둘 겁니다. 물론 행동으로 나를 공격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그러면 단언컨대 나 자신을 방어할 겁니다.


상처받았다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했다’가 아니라, 그 행위 때문에 ‘나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가 원인이다. 누가 봐도 상처 주는 말이지만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모건 프리먼처럼 말이다.  

ㅡ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中



우리는 대개 납득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처를 받게 된다. 자, 누군가가 나를 향해 비난의 말을 마구잡이로 쏘아댔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잠깐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음이 따끔따끔하고 속에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우리가 침착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 '그가 뱉은 말을 내가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나를 위한 채찍'이 아닌 오로지 '비난'으로만 똘똘 뭉친 것이라면 모건 프리먼의 말대로 '관심을 끊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과거의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상처받는 것을 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남들이 뒤에서 나를 헐뜯는 말은 독이 묻은 화살 같은 거랍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뒤에 숨어서 하는 말은 힘이 없어서 그 화살이 내 가슴을 뚫지는 못한대요. 그런데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땅에 떨어진 그 화살을 주워서 내 가슴에 찌르는 거죠. 맞지 않아도 되는 화살을 맞고,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받고.

ㅡ드라마 '프로듀사' 中



설사 심장을 겨냥한, 심지어 독이 묻은 화살일지라도 나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문제는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는 확고한 생각만 있다면. 그러니 그 누구도 상처주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상처받을지, 받지 않을지에 대한 선택은 당신과 나,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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