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채 Oct 25. 2018

[책방창업 8] 나의 작은 가게, 나의 작은 거리

책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

     

가계약을 마치고 며칠 뒤, 책방 ‘카프카의 밤’을 운영하는 K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은 서울에서 몇 달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동료였다. 그때 우리는 직접 책방을 방문하여 대표들을 인터뷰하는 책을 한여름 내내 같이 만들었는데, 그 여름이 무더웠던 만큼 서로에게 많이 마음을 의지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K 대표님을 함께 일했던 시간은 짧지만 마음을 많이 나눈 사람으로 여겨왔다.


K 대표님은 고향인 부산에서 책방을 열었다. 함께 일할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부산과는 전혀 접점이 없던 나 역시 부산에 와서 살게 됐고 책방을 열게 됐다. 그러니 책방 자리 가계약을 마쳤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고 싶었던 이가 K 대표님이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대표님은 공간을 구했다는 내 말을 듣고 잘됐다며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내친김에 책방 근처에서 밥을 먹고 책방 자리도 같이 보기로 했다. 한여름 서울의 추억을 안은 우리들은 어느 겨울날 해운대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K 대표님이 나와 책방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음을 느끼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날 대표님이 내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호리베 야쓰시 지음, 정문주 옮김, 민음사, 2018)라는 책이었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기도 했고, 책방 개업을 앞둔 나를 위해 K 대표님이 골라온 책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당겨 읽기를 미루지 않고 바로 읽어버렸다.


“우리는 그 유동인구가 게이분샤에만 들를 것이 아니라 서점 주변도 함께 둘러보라는 의미에서 2006년부터는 온라인 숍에 ‘가게 탐방’이라는 연재물을 올리고 인근 가게를 소개했다. ‘사람들이 흔들리는 한 량짜리 에잔 전철을 타고 게이분샤에 와 천천히 쇼핑을 즐긴 뒤, 구입한 책을 들고 주변 카페에 들러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 ‘체험’이 있어야만 다음에 또 와 줄 것이기 때문이다.” (44~45쪽)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판다’는 내 생각을 뒤엎고 내가 하려는 일의 영향력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실상 나에게는 책방을 통해, 또 책을 판매하는 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저 책을 계속 만드는 일을, 책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들 곁에서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책방이 지역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한다든지, 지역의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드는 문화의 장이 된다든지 하는 거창한 목표는 전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지역 사회 그리고 책방이 위치한 거리, 책방을 찾아오게 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느끼게 됐다.



“어쩌면 서점의 서가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통해 고객과 대화해야 한다. 고객과의 대화에 실패한 서가의 변화는 변덕과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68쪽)
“매출이 신통치 않은 책이라도 진열하는 방식에 따라 책은 자기 자신과 옆의 다른 책까지도 빛나게 한다. 그러니 서가를 잘 편집해 두면 손님들은 서가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 흥미와 지식의 폭을 자연스레 넓힐 수 있다.” (122쪽)
“그래서 손님은 구입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생각, 점주에 대한 신뢰감에서 그 가게를 계속 드나들게 된다.” (130쪽)


거리와 사람들과 계속해서 영향력을 주고받고 변화해갈 서점. 나의 책방이 어떤 모습으로 시작되고 바뀌어갈지 한 치 앞도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하려는 일이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다른 가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는 일이며 책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사람들은 나의 책방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며 경험하게 될까. 그들이 보고 느끼고 경험할 것들을 다섯 평짜리 작은 책방에 담아두기 위해 나는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할까.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나를 한껏 크게 부풀게도 했고, 나를 한없이 작게 쪼그라들게도 했다.





K 대표님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아 처음 읽었을 때 여러 군데 밑줄을 그었다. 그것들은 책방을 열기 전 내게 지침이 되기도 하고 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책방 문을 열어 운영 중이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을 때엔 조금 다른 문장들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책이 너무 적은 건 아닐까, 구경하기에 책방이 너무 작은 건 아닐까, 빨리 책 아닌 다른 잡화를 팔아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 책방에 너무 없는 건가… 무엇보다도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을 마음속에 던지고 있는 요즘이었다.


“서점의 매력과 재고량은 비례하지 않는다.” (127쪽)
“팔릴지 말지를 모를 때는(사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팔고 싶은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133쪽)
“‘작은 가게’라는 건 점포 규모가 아니라 개인의 의도가 점포의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상업 형태라는 의미에서 쓴 거예요.” (189쪽)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토닥토닥 내 어깨를 두드리고 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의 작은 가게 안을 둘러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책방창업 7] 상가건물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