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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Oct 22. 2018

[책방창업 7] 상가건물 임대차 계약을 진행하다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


손으로 쓴 가계약금 영수증을 받아온 이후, 2주 뒤에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가구 공방을 차리려던 직전 임차인이 셀프 인테리어를 하려고 가져다둔 자재가 많아서 그 물건들을 모두 치운 후 계약하기로 한 것이다. 이전 임차인의 물건이 모두 빠진 후 집주인 어르신이 조금 일찍 열쇠를 주셨다. 계약금을 내는 날은 최대한 뒤로 미루더라도 하루 빨리 인테리어 작업을 시작하라는 어르신 나름의 배려였다.


상가 임대차 계약은 처음이었고,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하지 않은 부동산 계약 또한 처음이었다. 공인중개사사무소를 통하면 계약서 양식 준비까지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계약하는 날까지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다. 하지만 그들의 도움 없이 집주인과 나 이렇게 둘 간의 거래는 도대체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인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슬쩍 집주인과 통화할 때 “제가 뭘 준비해가면 될까요? 신분증이랑 도장?” 여쭸다. 돌아오는 어르신의 쿨한 대답. “마 신분증 도장 마 필요 없다, 그냥 와라!”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끼지 않고 부동산 거래를 진행해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지인에게 물었더니, 보통은 임대인이 계약서 양식을 준비해오고 본인도 그렇게 계약을 진행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통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캐릭터 편지지 뒷면에 썼던 가계약금 영수증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계약서도 캐릭터 편지지 뒷면에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침을 발라 편지지 두 장을 뜯어서, 모든 항목을 손으로 기입하고(쓰다 틀리면 대충 긋고), 도장 대신 지장을……?


전문을 손으로 작성한 계약서도, 도장 대신 지장을 찍거나 서명을 한 계약서도 그 효력은 동일하겠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나는 혹시 몰라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 양식을 준비해가기로 했다.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는 ‘법무부(www.moj.go.kr)’에서 다운받을 수 있었다. 2부를 출력하려다가 만약을 대비해서 넉넉하게 4부를 챙겼다.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 다운로드

http://www.moj.go.kr/HP/MOJ03/menu.do?strOrgGbnCd=100000&strRtnURL=MOJ_10208030



법무부(www.moj.go.kr) ▶ 법무정책 ▶ 정책서비스 ▶ 법무/검찰 ▶ 상가건물임대차법령정보


대망의 계약일. 회사 행사 덕에 오전까지만 근무를 마치고 온 남편과 함께 갈 수 있었다. 공인중개사사무소 없이 처음 진행하는 임대 계약이 처음이니 많이 긴장됐기 때문이지만, 어쩐지 젊은 여자 혼자라고 불합리한 일을 당하거나 무시 받는 경우가 없었으면 해서이기도 했다.

“사장님, 근처에 카페에 가서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계약서 쓸까요?”

“뭐하러 돈을 쓰노, 집에 가서 하면 된다.”

그 지점에서 나는 더더욱 남편과 함께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라곤 얼굴과 이름, 성별, 생년월일, 휴대전화 번호뿐인(게다가 이 정보들조차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낯선 남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면 마음 놓고 따라갈 여자는 아무도 없을 거다. 어르신의 뒤를 따라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더 무서웠다. 집 안이 온통 공구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가게 자리 주변에서 얘기를 나누며 조합했던 정보로는 어르신은 해운대 토박이로 우동 일대 사람들에게 신뢰를 많이 받는 마당발이었다(동네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는 김반장 느낌). 은퇴 전에는 설비설치 일을 주업으로 하셨던 듯했다. 어르신의 말을 들어보니 실제 살고 있는 집과 설비설치 일을 하는 집이 따로 있다고 했다. 신발도 벗지 않고 실내를 오가는 집이라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했다. 계약서를 쓰는 동안은 남편은 대문 밖에서 기다리기로 한지라 집에 따라 들어온 것은 나뿐이었다. 집밖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하는 것으로 속아 집까지 따라가서 스패너로 머리를 얻어맞고 죽은 30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는 상상을 했다.




이윽고 어르신은 공구가 가득한 방 한편 책상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적이고서야 봉투에 든 서류 몇 장을 꺼냈다. 잘 펼쳐지지 않는지 침을 묻혀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하셨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골똘히 보니, 앞면을 쓰면 뒷면에 그대로 글씨가 옮겨 써지는 깜지 형식으로 된 계약서 서식이었다.

“으이, 우야노. 사와야 되나. 남는 면이 없네.”

어르신은 지난번 임차인과 계약할 때 쓰고 남은 서식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깜지 계약서는 여분이 없었다. 이때다 싶어 프린트해온 계약서가 있다며 가방에서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를 꺼냈다. 다행이다!


상가건물 임대차 표준계약서


구두로 주소, 보증금, 월세, 월세 입금일, 계약 기간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계약서 양식을 채워나갔다. 어쩐지 계속 긴장이 돼서 손이 덜덜 떨렸다. 모든 내용을 똑같이 채워 넣은 후, 계약서를 나란히 두고 어르신은 서명으로 나는 도장으로 날인까지 마쳤다. 계약서를 1부씩 나누어 갖고,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공구가 가득한 어르신의 집을 후다닥 빠져 나왔다. 물론 스패너로 얻어맞는 일 따위는 없었고, 그날 나는 준비해간 표준 임대차 계약서로 진짜 계약을 잘 마쳤다. 너무 긴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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