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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Dec 19. 2018

[책방창업 11] 예산이 부족하니, 셀프 인테리어 I

1단계: 기존 흔적 없애기


계약서 작성, 보증금과 첫 월세 입금까지 마친 뒤 책방 열쇠를 인계받았다. 월세 부담을 없애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인테리어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테리어 업체에 맡긴다면 당연히 몸도 마음도 편했겠지만, 보증금과 예비비(오픈 3-4달간의 운영자금) 그리고 도서 구입비를 생각하면 업체를 쓸 만한 돈이 없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최소한의’ 인테리어만을, ‘셀프로’ 진행하기로 했다. 책방은 식당이나 카페 등과 달리 수도나 조리 시설 등 다른 설비를 설치할 필요가 없기에 직접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다.


최대한 이 공간의 많은 것을 그대로 두고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지를 떼어낸 후 페인트를 칠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뒤, 바닥을 새로 까는 것 정도가 전체 계획이었다.

     


     

1단계: 기존 흔적 없애기


1) 벽지 뜯어내기

책방 자리는 오래된 건물로 수많은 세입자가 거쳐 간 이력이 있었다. 집주인의 말로는 예전엔 냉난방 시설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이곳을 주거 공간 삼아 지낸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벽에 벽지가 겹겹이 덧대어 있었다. 이전 세입자가 벽지를 뜯어내던 흔적은 있었지만 중간에 멈추고 나가는 바람에 그마저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벽지를 떼어내는 것부터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스틸로 된 ‘스크래퍼’로 긁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떨어지지 않았다. 셀프 인테리어 후기들을 검색해보니 물을 바르면 풀이 녹아서 수월하다 했다. 페인트를 칠하려고 사둔 롤러에 물을 적셔 벽지에 바른 후 스크래퍼로 긁으니 훨씬 쉽게 벽지가 떨어졌다.



2) 못 구멍 메우기

이전 세입자들의 또 다른 흔적은 벽에 난 못 자국이었다. 드문드문 못이 박혔던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대로 페인트를 칠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새하얀 벽에 까만 구멍들이 보이게 될 것이 싫어서 못 구멍을 모두 메웠다. 큰 마트에 가니 ‘틈새 메꿈씰’ 등 이름으로 벽면 크랙을 보수할 수 있는 ‘아크릴 실란트’ 제품을 팔고 있었다. 건조한 후에 페인트 도장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구멍을 실란트로 가득 채우고 스크래퍼로 가볍게 긁으니 표면이 평평해졌다.



3) 문에 붙은 시트지 제거하기

문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기존의 문은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차지하는 큰 유리가 끼워진 알루미늄 소재 미닫이문이었고 불투명한 시트지가 붙어 있었다. 문은 가게의 첫인상이기도 하니 업체의 도움을 받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손을 많이 대지 않고 기존의 것들을 살려 인테리어하기로 한 내부 풍경을 떠올리면 기존의 문은 크게 이질적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을 좋아하기에 괜찮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불투명 시트지만 제거하면 커다란 유리창이 나름대로 매력 있을 것 같았다.

문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시트지를 떼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시트는 문에 아주 오랜 시간 붙어 있었는지 모서리부터 살살 긁어 손으로 잡아당기는 것으로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스크래퍼와 끈적이는 것을 녹이는 스프레이까지 동원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루, 아니 이삼 일 내내 이것만 해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아득할 정도였다.

그때 마실 나가던 집주인 어르신이 시트지와 씨름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더니 자동차 트렁크에 실린 공구함을 뒤져서 끝이 칼로 된 ‘끌칼’을 가지고 나타나셨다. 내가 가진 스크래퍼와 비슷해 보였지만 일반 스크래퍼로는 되지 않던 것이 끝이 날카롭게 납작한 끌칼로 밀기 시작하니 감자 껍질 벗겨지듯 깨끗하게 떨어졌다.

어르신은 간만에 재밌는 일이 생겼다 싶으셨는지, 아니면 젊은 놈 혼자 낑낑대는 게 안쓰러웠는지 내가 문 두 짝에 붙은 시트지를 모두 없앨 때까지 떠나지 않고 근처를 어슬렁거리셨다. 마침내 시트지를 모두 제거하고 유리창 세정제를 뿌려 닦으니, 커다란 창이 새것처럼 반짝반짝 깨끗했다!



4) 청소하기

책방 자리는 이전 세입자가 가구 공방을 열려고 임대차 계약을 했지만, 세입자에게 사정이 생겨 네 달 가까이 진행하지 못하고 비어 있다가 나갔다고 한다. 가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니 내부도 셀프로 인테리어를 진행하려고 했던 것 같다. 계약 전 공간을 살펴볼 때 나무판자와 커팅기 등이 놓여 있었다. 나무를 자르며 나온, 앞서 말했듯 떼어내다 만 벽지들에서 나온, 4개월간 방치되며 쌓인 먼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후 인테리어를 하기 위해서는 청소가 시급했다. 한눈에 봐도 먼지가 너무 많아서 산업용 마스크를 쓰고 청소를 했다. 쓸고 쓸고 또 쓸고… 전체를 서너 번쯤 쓸고서야 먼지가 거의 없어졌다. 그마저도 완전하진 않아서 물걸레로 두 차례 이상 닦고 나니 깨끗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기존 흔적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방치되었던 공간이 생기를 얻는 느낌이 들었다. 또 작은 가게이지만 모든 곳에 내 손길이 닿으니 없었던 애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전문가들의 완벽하고 멋진 인테리어는 없어도, 내 손길로 잘 꾸미고 가꿔야지. 그게 나의 인테리어, 나의 가게, 나의 공간이겠지.’ 생각하니 돈 때문에 못한다는 쭈글쭈글한 마음이 조금씩 펴지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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