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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Jul 15. 2022

마침내, 나는 불안해졌다

불안 & 분노 일기를 시작하며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되어, 몇 해 전부터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 R이 있다. 성글지만 꽤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다보니 우리는 친구의 친구에서 진짜 친구가 되어가고 있는데, 나는 그만큼 R에게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R로부터 두세 통 편지를 받은 후에 겨우 한 통 편지를 쓴다. 마음이 없다기보다 시간과 체력이 모자라서다.


세 통쯤 R의 편지를 받고, 내가 가진 가장 귀여운 편지지를 골라서 펜을 들었다. 근황을 적어내리다 보니 최근 며칠, 몇 주간, 몇 달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마음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이랬구나. 글자로 쓰인 마음을 보니 내가 잘 보였다. 꼭 무슨 마음 진단서 같아서, 나는 그 편지를 부치기 전에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가끔 보면서 생각하자, 벗어나보자, 다른 마음을 갖자.


그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욕심내지 않았던 것들을 원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저의 처지를 보게 되고, 그 간극이 저를 마침내,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와 나는 동갑이지만 서로 존댓말을 쓰는 친구 사이다.)



나는 불안해진 것이다. 서른 살 넘도록 단 한 번도 삶이 불안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내게 미래란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고, 계획이란 꼭 그것대로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미래도 계획도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긍정하다보면 뭐든 어떻게든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 그런 마음에는 불안이 움틀 자리가 없었다. 불안이란 필연 내일에서 오는 것. 내게는 내일은 없고 오늘만 있었기 때문에 불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기며 많은 게 달라졌다. 알 수 없는 내일에 내 아이들을 무사히 지키기 위해 오늘을 사용한다. 내일이 두렵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불안해졌다. 프리랜서로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책방을 꾸리는 바로 지금 오늘이, 내일 무엇이 될지 불안하다.



내향인인지라 겉으로 조용해 보이는 것과 달리 늘 내면이 끓는 에너지로 긍정적이고 의욕이 넘쳤던 나는 불안을 느낀 뒤부터 꽤 오랜 시간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러나 함부로 무기력할 수도 게으를 수도 없었다. 엄마인 내가 멈추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려면 마음에 스위치를 켜고 바삐 움직여야 했다. 돌봄을 위해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애썼지만, 아무래도 예전과 같은 내가 아님을 자꾸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보아야 한다. 느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써보기로 했다. 현재의 나를 매일 불안하게 만드는 마음을, 화가 나 들끓게 하는 순간을. 삼십 해 넘게 나는 자신의 장점으로 ‘화가 나지 않는 것’ ‘삶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것’을 꼽곤 했다. 그 장점들을 잃어버린 나는 어쩐지 나를 닮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에 쓰는 글은 아마도,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한 작은 여정일 테다. 마침내 마주할 나를 위한.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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