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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Jul 19. 2022

내 할 일을 하는데 화가 나는 아침

남편이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은 토요일 아침

토요일/일요일 해방의 순간. 아름다운 것에 시선이 머물 때.



먹는  좋아하는 둘째는 아침에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유를 달라며 냉장고 앞으로  손을 이끈다. 시원한 우유  잔을 건네고, 고무장갑부터 낀다. 지난 저녁 밥을 먹고 쌓아둔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침 7, 하루 노동이 시작됐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절반은 프리랜서, 절반은 살림 담당으로 살아가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고부터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그야말로 노동의 연속이다. 출근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 중 깨어 있는 동안 설거지, 빨래, 청소 살림 3대장을 해치우는 일이 녹록지가 않다. 등원시키고 출근하기 전 30분, 퇴근하고 하원시키기 전 30분까지 살뜰하게 챙겨 장을 보고 분리수거를 한다.


내가 살림을 도맡게 된 것은 둘째가 어린이집에 완전히 적응한 4월 초 무렵부터였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분담하고 협의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내게 시간이 더 생기고 몸과 마음에도 여유가 드니 그렇게 됐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돈을 얼마만큼 벌든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워서 시작한 것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돈은 많이 못 벌고, 시간과 체력이 닿는 만큼 내가 살림을 다 해치우자, 남편을 집안일로부터 해방시켜주자, 이런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정말 악착같이 집안일을 해냈고 3개월 넘도록 남편은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게 됐다. 생색을 내진 않았지만 혼자 흐뭇해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살림의 주체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했던 지난 3년 동안 요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 바지 주머니에 휴지를 넣어둔 채 빨래 바구니에 넣어두거나 분리수거 통에 아무거나 뒤섞어 버려두어 핀잔을 듣는 건 항상 나였다. 하지만 나는 '뭘 이런 걸 가지고 잔소리를 하나' 하고 도리어 큰소리치기 일쑤였다.


남편이 복직하고 반년 정도는 모든 게 혼란이었다. 남편도 3년 만에 돌아간 일터에서 적응하느라 바빴고, 나는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둘째와,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며 힘들어하는 첫째를 돌보는 와중에 프리랜서 일이며 창업이며 놓치지 않으려고 매일 새벽까지 잠들지를 못했다. 둘이서 닥치는 대로 살림을 해치웠다.


3월부터 등원한 둘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살림의 주체가 바뀌고,  사이클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살림의 주체가  사람을 고달프게 만드는 ,  고된 노동이 살림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금세 잊힌다는 점이었다. 내가 남편이 3년간 해낸 고된 살림 노동의 가치를 몰랐거나 잊거나 외면했던 것처럼, 서너  만에 내가 하는 고된 노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졌고 아마도 그에게 잊혔다.




토요일 아침. 여느때처럼 일찍 일어난 아이들이 내 아침을 깨운다. 7시도 안 됐다. 일어나서 둘째에게 우유를 부워주고 설거지부터 시작한다. 토요일은 내가 가게로 출근하고 남편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날이기에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본다.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여기저기서 옷가지를 모아 세탁기를 돌린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아침 밥을 준비해 아이들을 먹인다. 대충 서서 몇 입 집어먹고 어지러진 거실과 부엌을 정리한다. 아이들이 다 먹고 자리에서 내려올 때쯤부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모든 방까지 청소가 끝날 때쯤 세탁기 종료음이 들려 빨래를 넌다.


단 한 번도 앉아 쉬지 않고 일했는데 9시 반이 됐다. 아이들은 저마다 놀잇감을 찾아 놀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깨우지 않긴 했다. 5일 내내 출근했으니 오늘만은 늦잠을 자라고, 오늘 하루 두 아이들과 씨름해야 하니 더 자라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림을 시작한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화가 난다. 내가 7시도 안 되어 눈을 뜨고, 그때부터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고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는데, 어떻게 일어나려는 시늉도 안 하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즈음 자리에서 일어난 남편이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말을 걸어온다. 매일 출퇴근에 토요일은 육아전담, 일요일은 다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니 자기 시간이 하나도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잠이 설핏 깼었는데, 내 시간도 없는데 아침 잠이라도 더 자자 싶어 눈을 감아버렸단다.


남편은 그냥 자기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는데,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내가  깨웠잖아!" 괜찮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역시 화가  있었다.   자라고 내버려두었어도 우리가 활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적당할  일어나야 하는  아닌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엄마를 불러 대화하고 도움받길 원하는 아이들 곁에 앉아서 대꾸라도 해주면 좋지 않은가.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짜증이 나 있던 토요일 아침. 부글부글 끓던 내 안의 화가 잠잠해지고 나니 또 남편의 처지가 안쓰럽다. 일요일 오후는 남편의 자유시간으로 주기로 몇 달 전에 약속했었는데, 오전에 여기저기 다 같이 나들이 다니다보면 지키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본인 말로는 딱 2번, 자유 시간을 썼단다.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내일 오후에는 꼭 나가서 여보 시간 보내고 와요."

 

그렇게 얘기하고 출근하는 길. 상황을 여러 번 곱씹어보면 남편과 나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고, 서로 화를 내고 발목 잡아두어 힘들게 만드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더 짊어지고 한 사람이 자유시간을 보내고 오는 편이 계속해서 두 사람의 살림/육아의 균형을 맞추는 데 훨씬 이롭다는 걸 안다. 짐이 무거워지면 다음엔 내가 자유시간을 보내고, 핑퐁핑퐁 계속 오가면 된다.

(그리고 내게는 휴무일인 월요일이 있다. 물론 보통은 집안일에 못다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따지고 보면 쉬는 날은 아닌 게 되지만.)


우리 사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수밖에, 시간을 건네는 수밖에 없다.

내 할 일을 하는데 화가 나는 아침. 여전히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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