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불 앞에 서지 마라’는 말에도 화가 난다
오늘도 밥을 한다. 두 아이들이 함께 먹을 수 있을 만큼 맵지 않은 메뉴를 골라서. 어떤 음식은 조금 덜어내고 청양고추와 고추장을 넣어 따로 끓일까, 하다가 그만둔다. 매콤한 걸 먹으려다가 냄비도 2배, 앞접시도 2배 늘어나면 설거지로 고통 받는 건 나일 테니까.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줄 영양을 빠지지 않게끔 최대한 다양하게, 그러나 반대로 나와 남편의 기호는 줄이고 줄여서, 매일 밥을 한다.
요사이 몸이 많이 아팠다. 몸살이 와서 일주일 넘게 온몸 마디마디가 찌르듯 아팠다. 진통제를 먹으며 아이들을 돌봤다. 몸이 힘드니 금요일 오후에는 다 같이 외출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마저도 소화기능이 떨어진 몸에다 허겁지겁 음식을 넣었는지 체해버렸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가슴이 답답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내 가슴은 답답해서 음식이라곤 지긋지긋한데, 온몸이 아파서 서 있기조차 버거운데, 소화제와 진통제를 먹고 먹거리를 차려낸다. 배고픈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어제도 바깥 음식을 사서 먹였는데 오늘만은 또 배달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아서, 나는 불 앞에 버티어 선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동원해도 가시지 않는 열기 앞에서 조리하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엄마를 떠올린다. 13회에서 염씨네 식구들은 용달트럭을 타고 가다가 어느 가족과 신경전이 붙어 논길을 질주한다. 그러다 일순간 균형을 잃고 논뚜렁으로 트럭이 처박힌다. 수확했던 못난이 고구마와 엄마, 아빠, 창희가 논뚜렁에 나뒹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밥을 한다.
염병, 논뚜렁에 꼴아 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쳐야 하니...!
엄마 곽혜숙의 말이다. 극중에서 엄마는 계속해서 밥을 안친다. 김치냉장고 깊은 곳에서 수도 없이 김치를 꺼내고, 상이 한가득 찰 만큼 많은 반찬을 차려낸다. 귀가하는 삼남매에게 일일이 "밥은? (먹었어)?" 묻는다. 집으로 놀러온 아들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냄비 가득 야식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사내(구씨)에게 계속해서 밥을 먹인다. 그가 혼자 배를 곯을까봐 막내딸 미정을 통해 반찬까지 챙겨서 가져다준다. 그게 숙명인 사람처럼. 쉴 새 없이.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밥을 얻어 먹던 이들이다. 그래서 내 눈에는 장례식 컷마다 비춰지는 인물들 모두가 엄마 곽혜숙의 어린 자식들처럼 보였다. 삼남매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남편인 염제호까지도.
창문 너머로 아기새처럼 야식을 받아들던 아들의 친구들은 엄마의 영정사진을 들어올린다. 아마도 그들만큼이나 많은 밥을 함께 먹었을 현아는 문밖에서 오열한다. 심지어 엄마가 죽던 날 낮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조태훈 또한 엄마가 사준 밥을 먹지 않았던가? 그래서 끼니 때마다 엄마의 밥을 입안으로 밀어넣던 구씨의 빈자리는 더 크게 다가왔다. 아이야, 엄마가 죽었단다, 하고 나는 구씨의 꿈결에 가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엄마 곽혜숙은 죽는 날 마지막 순간에도 밥을 안쳤다. 나는 그 모습이 자꾸 나 자신에 오버랩되었다. 정말 계속해서 밥을 짓겠구나. 논뚜렁에 꼴아 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치는데, 이렇게 몸살이 나도 아이들을 먹이려면 진통제를 삼키고 버티고 살아야 하는구나. 염병, 나는 살아야 하는구나.
물론 우리 식구들도 배달음식을 종종 시켜먹고, 사람이 많지 않은 식당도 골라 이따금 가본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인 나는 '먹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밥때마다 밥을 차려야 하는 것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심지어 내가 안 먹어도 밥을 해야 하고, 그것은 꽤 정상적이고 상싱적인 선에서 건강한 음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이내 밥이란, 이 지긋지긋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여름엔 가능하면 가스레인지 앞에 서지 말라는 싱글 여성의 조언을 들으며,
일순간 화가 끓어올랐다가,
그래도 내 새끼 입에는 배달음식 말고 인스턴트 말고 좋은 걸 넣어주어야지,
다짐하면서 다시 불 앞에 서는 것이다.
지긋지긋하게도. 오늘도 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