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살림에 집착하는 엄마들의 정신건강
'미니멀리즘'이 유행한 지는 꽤 됐지만 사진과 영상 같은 시각물을 중심으로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SNS가 보편화되면서 '미니멀'이라는 화두의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한 듯 느껴진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이른바 '미니멀리스트'로 이름붙고 그 일상을 책으로 출간한 어느 작가를 한 명 팔로우하고 있다.
딱 한 명이다. 처음엔 미니멀리스트 인플루언서를 여러 명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협찬/광고는 거의 띄우지 않으면서, 종종 실용적인 정보와 인사이트를 전해주는 한 사람만 남겼다. 그를 보면서 배우고 자극을 받는다. 자극을 받은 날이면 뭐라도 하나 비워내려 노력한다. 가방 속을 뒹굴던 영수증 한 장이라도.
그런데 이렇게 롤 모델을 두고 따라한다면 누구나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까?
INFP인 나는 온갖 사소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애지중지하는 탓에, 사연 있는 사탕 비닐과 병 뚜껑이나 수업시간에 주고받은 쪽지, 오래전 남자친구들이 남긴 자그마한 흔적들까지 몽땅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무엇 하나 비워보려고 물건들을 꺼내면 추억에 푹 잠겨 시간여행을 떠나고,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 채 보물상자 뚜껑을 닫고 만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는 동안 분유, 기저귀, 보행기, 바운서 같은 것들로 집은 자꾸만 꽉꽉 차올랐다. 아이들이 자라며 큼지막한 물건들을 치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신 장난감이나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늘었고 아이들의 활동반경은 더더욱 넓어져 집은 곧잘 어지럽혀지곤 했다.
퇴근 후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그 틈에서 어지러운 집을 치우기란 쉽지 않다. 금방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 전까지 10분이라도 쉬고 싶어 잠시 몸을 누인다.
일+육아든, 살림+육아든 혹은 아이가 없든 하면 시도해볼만 하겠지만, 사실 미니멀리즘이란 일+육아+살림 쓰리콤보 안에서는 이루기 벅찬 과제다. 이따금 일+육아+살림을 종합하고도 미니멀하게 지내는 엄마들을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녀가 한 명이거나, 그 자녀가 초등학생 정도로 자랐거나, 아이가 딸인 경우가 많았다.
(여자아이의 경우 보통 특정 반경 안에 머물며 몇 가지 놀이를 오랫동안 한다던데, 남자아이는 그들의 몸이 올라갈 수 있는 모든 곳에 도달하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놀이가 산만하게 계속 바뀌고, 끝내 많은 것을 망가뜨린다.)
그런데 일+다섯 살 이하인 아들 둘 육아+살림을 병행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자꾸 "완벽주의" 안으로 밀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잘해내고 완벽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압박했다. 미니멀리즘을 꿈꾸는 것도 그 일부였다.
딸 하나를 키우며 아주 말끔한 집 안 환경을 유지하는 친구가 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아이 사진 뒤로 깨끗하게 정돈된 집을 눈여겨 보면서 매번 대단하다고 느꼈다. 한번은 그 친구와 만나 이야기 나눴는데, 친구가 완벽한 살림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임신하고 애 낳으면서 퇴사했는데,
나는 이제 돈을 안 버니까
살림이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쓸고 닦고 버리고 치우고....
무조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지.
광이 날 만큼 부엌을 닦고 또 닦으며, 친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고 회의감이 든 날도 있었다고 한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친구는 무언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 무게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었고, 미니멀리즘을 따라, 완벽한 살림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우리 집을 바라보며 나는 묻는다.
'엄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나는 지쳐 있는 자신에게 답해준다.
'다시 태어나도 넌 미니멀리스트는 못 돼, 안 되는 건 그냥 포기해.
일도 살림도 육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만큼만 해.
너는 너야, 너로서 너를 살아.'
소란했던 마음이 조금, 조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