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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ug 27. 2022

에브리바디 바디 프로필?

자기 몸을 전시하는 세상에서 갈 곳 없어진 엄마의 몸


처음 어느 후배가 "바프를 준비한다"며 운동하는 과정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바프'라는 단어가 무엇의 줄임말인지 검색해봤다. 그리고 얼마 후 후배가 바디 프로필을 찍어 게시한 것을 보았을 때는 다소 놀랐다. 비키니를 입었지만 사실상 거의 다 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 사진들을 왜 전체공개 SNS에 올린 걸까 하고.


에브리바디, 바디 프로필! 모두가 바디 프로필*을 찍어 올리는 시절이다. '건강한 몸을 잘 단련하고 가꾸어 기록하는 과정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호방하게 적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SNS에 하나둘 바디 프로필이 경쟁하듯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름다움보다는 기괴함을 느꼈고, 그 기괴함 속에서 기이하게도 부러움과 절망에 휩싸였다.


(*body profile, 말 그대로 몸의 프로필을 보여주는, 보디빌더가 몸의 근육이 잘 보이게끔 찍은 프로필 사진 같은 것인데, 몇 년 사이 20대~30대 여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두 아이를 낳은 뒤 몸이 많이 변했다.


일단 기본 체중 자체가 늘었다. 첫째 낳고 +2킬로그램, 둘째 낳고 +2킬로그램, 총 4킬로그램이 출산 전 몸무게에 더해져서 특별히 노력하지 않는 한 빠지지 않고 유지된다. 출산 후 10킬로그램 이상이 늘며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살이 크게 찌지는 않았지만 찌긴 쪘다. 팔뚝과 배에 집중적으로. 평소 스타일대로 헐렁하게 옷을 입으면 사람들은 "애기 낳고도 그대로네!" 얘기하지만, 팔이 너무 도드라져 더 이상 민소매 원피스는 입지 못하게 됐고 예전에 입던 바지를 입고 앉아 있으면 배가 너무 조여 단추를 살짝 풀어둔다.


얼굴도 눈에 띄게 늙었다. 어렸을 때 티브이에 나오는 몇몇 중년 여자 배우를 보며 엄마가 “역시 애기 안 낳은 여자들은 얼굴이 아직도 어려 보이네”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면 그저 엄마만의 푸념이라 여겼는데……. 엄마 말이 사실이었다. 나 또한 정말로 출산 전후로 얼굴이 확 달라져 보일 만큼 늙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오빠와 나를 낳고 뱃가죽이 늘어난 탓에 뱃살이 찐 거라던 엄마의 말 역시 사실이었다. 엄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외적인 변화 외에도 몸 안의 상태와 체력도 변했다. 손목과 무릎이 많이 약해져서 조금만 무리하면 시큰시큰 아파온다. 닷새간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듯 나오던 생리혈이 첫 하루이틀 왕창 쏟아지는 식으로 바뀌어 생리 때마다 심각한 두통을 앓게 됐다. 몇 년간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타고난 건강체질이었지만, 출산 후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감기를 앓을 때면 꼭 옮아서 아프다.

  

첫째 만삭이 가까워오던 어느 날의 내 몸. 부산 영도 '손목서가'에서.


4~5년 사이 많이 변해버린 몸뚱어리를 이끌고 이런저런 살림을 해치우고 나서 아이들까지 모두 잠들면 겨우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결국 SNS를 본다. 그러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들이 쏟아져내린다. 


아, 젊고 예쁘다. 생기가 넘치네.  

 

자기 몸을 보여주려고 안달난 작금의 세상이 너무 기괴하면서도 나는 결국 푸념하듯 모종의 부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부러움 뒤에는 좌절이다. 두 아이를 품으며 거죽이 많이 늘어난 배를 한 번 만져보고 팔뚝살도 한 번 꼬집어본다. 그러곤 이렇게 결심한다.


내일은 운동을 해야지, 꼭.   


내일, 내일! 지금 당장 걸어나가 동네 한 바퀴라도 걷고 오는 게 아니라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건, 온종일 두 아들과 씨름한 엄마의 몸이 지금 당장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 밤은 그냥 소파 위에 지쳐 쓰러져 있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힘은 손과 눈에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물론 자기 관리가 철저해 출산 후에도 아름답고 건강하게 몸을 가꾸고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엄마에게 반드시 관리가 가능한 여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운동은커녕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엄마들도 있고, 배우자가 매일같이 야근할 수밖에 없는데 도움 줄 다른 가족이 없어 홀로 아이를 도맡아 몸이 매인 엄마들도 있다. 엉망진창이 된 몸을 어찌하지 못한 채 사는 엄마들의 사연은 각각의 가정 수만큼 존재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내게도 모종의 사연은 있다.


모두가 바디 프로필을 찍어도 그건 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부러우면서도 살림과 두 아들 육아 끝엔 몸을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를 않고,

"내일부터는 꼭 운동을!" 다짐하며 SNS 타임라인을 바삐 헤매는 엄마의 날들이 이어질 뿐이다. 


둘째 임신 중이던 어느 날의 내 몸. 부산 일광 해수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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