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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Feb 25. 2023

엄마 운동하러 가도 되니?

아이들아, 스무 살이 되면 같이 아이슬란드를 여행하자

건강검진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몇 차례 미루다 해를 놓치고, 다시 홀수년생 검진 해가 돌아와서 4년 넘게 만에 받는 검사였다. 세부적인 검사 결과는 추후 결과지로 받아보는 것이라 몸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당장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간단한 항목들은 내 상태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측정하는 검사를 받고는 나는 웃었다. 스트레스 지수는 낮은데, 피로도가 꽤나 높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가만히 있어도 잠이 쏟아지는 상태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엣말을 했다. ‘아들 둘을 키우면 몸이 이렇게 피곤해진답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남자아이들의 경우 행동반경이 아주아주 넓다), 그대로 두면 정말 지구 끝까지라도 뛰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체력을 가진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면 삼십 대 중반의 나는 늘 지쳐 있다. 피로하다 정말.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을 때는, 아이에게 병원 놀이를 하자며 환자처럼 누워 있는 아빠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좀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누워 육아하는 본인이 됐다. 나는 틈만 나면 아이들 틈새에 누워 쉰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출산 후 자연스럽게 몸은 많이 약해졌고 아름답지 않게 변했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열중하다 보니 그만큼 내 몸을 돌보는 데에는 소홀하고 말았다. 에너지 넘치는 두 아이를 상대하려니 오후에는 ‘당 충전’ 삼아 달콤한 간식을 많이 먹었고 매 끼니 밥도 정말 많이 먹었다. 상체가 눈에 띄게 뚱뚱해졌고 아이를 갖기 전에 비해 몸무게가 5킬로그램 가까이 늘었다.

십수 킬로그램이 쪄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기초대사량이 좋아서 늘 일정 몸무게를 기준으로 ±1~2킬로그램 범위 내에서 몸무게가 변하지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 일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몇 년에 한 번 감기에 걸릴까 말까 하는, 수술하거나 입원해본 적이 단 한 번 없는 통뼈 인간이었고 늘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내 몸을 돌보아야 했다.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몇 달 전부터 유독 무거워지고 게을러진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몸은 기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자꾸 영향을 주었다. 긍정적이고 밝은 내 기본 성미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듯했다. 

운동을 간절히 원했지만 둘째 아이가 발목을 잡았다. 저녁에 남편과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 “엄마는 오늘 운동 다녀올게, 먼저 자고 있어!” 하고 운동의 ‘운’이라도 꺼낼라 치면, 둘째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제 말이 제법 는 둘째는 자기 뜻을 정확하게 밝히며 엄마 다리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 “나는 엄마랑 잘래! 운동 안 돼! 엄마랑 엄마랑!!!” 까무러치며 우는 아이를 두고 몇 번은 단호하게 나갔는데, 몇십 분이고 그 상태로 악을 쓰고 울다가 겨우 잠드는 아이를 생각하면 더 이상 운동을 다닐 수 없었다. 



마음만 절실한 채 운동을 하지 못하는 사이, 나는 역시 infp다운 상상력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말 상상도 못한 별별 사연들을 접하게 되는데, 30~40대에 갑자기 생을 마감한 또래들의 사연도 그중 일부였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등진 사람도 있었고, 건강하던 이가 돌연사하기도 했다. 나는 자주 돌연사 상황에 자신을 이입했다. 내가 어떤 질병으로 갑자기 죽으면 짝꿍은 얼마나 힘들게 두 아이를 키워야 할까? 고될 것이다. 마음이 자꾸 작아지고 박해져 외로울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훗날 아이들의 얼굴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미래의 아이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캠핑도 가고 시시콜콜 그날 있었던 일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니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다소 초조하게 몇 달이 지나는 사이 둘째도 조금 더 자랐는지, 어느 날은 울음을 삼키고 엄마를 겨우겨우 보내주더니 또 어느 날부터는 울지도 않고 쿨하게 보내주기 시작했다. 아빠와 형아와 사이 좋게 방으로 쏙 자러 들어가고 나는 런닝화를 챙겨 헬스장으로 간다. 아이가 울지 않으니 가뿐하게 집을 나설 수 있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내 몸만 생각한다. 요즘 나는 몸과 맘을 돌보는 일에 골똘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저녁에 헬스장에 가고, 그렇지 않은 날은 책방 문을 열기 전에 천변을 산책하고 자기 전에 요가를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볍게 닭 가슴살 샐러드와 두유로 점심식사를 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오래도록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고, 그들의 삶을 나누어 받고 싶다. 내가 낳은 두 아이가 스무 살과 열여덟 살이 되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아이슬란드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더운 숨을 뱉으며 눈과 얼음의 나라를 오래도록 걷고 싶다.

먼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어쩌면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마음.

나는 이 아이들을 몹시도 사랑해서, 그들의 미래를 갖고 싶다. ◆


부러 시간을 내어 해를 쬐며 걷다보면 몸도 맘도 한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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