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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채 Aug 13. 2022

인생 총량의 법칙과 두 아들

아들 둘 엄마는 오늘도 목소리가 커져 간다


방송인 김나영이 <유퀴즈 온더블록>에 출연하여 자신의 SNS에 올렸던 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았다.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그 한 마디.


육아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인 걸 확인하게 한다.
보고 싶지 않은 내 끝을 내가 본다.


나도 매일매일 끝을 보는 사람이다. 내게는 아들 둘이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자주 "꾸러기들"이라 부르는데, 하나는 장난꾸러기고 하나는 말썽꾸러기다. 이제 내게 더 이상의 출산계획은 없고 내 인생에는 아들만 둘이니 딸 키우는 상황이 어떤지는 평생 알지 못할 거다. 또 자식이 없거나 하나만 키우는 집의 사정도 영영 알지 못하리라. 내게는 말 안 듣는 아들이 둘이다!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체 하는 게 아니라 귓바퀴에서 튕겨내는 꾸러기들이 둘이나 있다는 말...)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다. 한 사람이 한 생애를 살며 겪는 불행과 행복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결국엔 어떤 사건들을 모두 겪어내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며 그 말에 처음으로 공감했다. 전형적인 내향인인 나는 낯선 사람 만나는 것과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인 곳을 싫어하고 대체로 조용하게 말한다. 불필요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살면서 주로 나의 목소리나 말투를 형용하는 말은 '나긋나긋하다' '차분하다'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내 목소리가 점점 달라지고 있다. 일단 배에 힘을 주고 크게 소리를 내는 법을 깨쳤다. 그리고 평소보다 굵고 낮게 발성하게 됐다. 물론 평화로운 때에 그런 목소리는 등장하지 않는다. 두 꾸러기가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할 때, 하나 혹은 둘 모두가 자기 요구사항을 들어달라며 무근본 떼를 쓰기 시작할 때, 그때 나의 제2의 목소리는 등장한다. "왜 왜! 또 싸워!! 그만!!! 밀지 마 때리지 마!!!!!"  


물론 나도 원래의 나처럼 나긋나긋하고 차분하고 나직하게 아이들을 설득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대로 두었다간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는 두 아들 녀석 간의 다툼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유지할 여유 따위 없다. 일단 아이들의 문제 상황을 멈출 수 있을 만큼 크고 굵게 소리를 질러 주의를 끈다. 





거기에서 끝나면 양호하다. 영화 속 헐크가 전혀 다른 인격체 안에서 깨어나듯, 또다른 내가 깨어날 때가 문제다. 아이들끼리 다투거나 어떤 상황을 두고 끊임없이 떼를 쓰며 우는 상황을 마주하면, 인내 게이지가 조금씩 차오른다. 그리고 정말 뚜껑이 열리듯 나는 폭발한다. 그때 감정은 제어되지 않는다. 헐크처럼 나는 성난 얼굴로 아이들에게 화와 짜증을 모두 쏟아낸 뒤에야 사그라들 수 있다. 


사그라든 뒤에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힘들다. 얘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인데. 몇 년 살지 않았고 판단도 미숙한 아이들. 어른의 기준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고 통제되지 않는 게 당연한데. 내 감정을 폭발시키며 나는 이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나는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다스리지 못하고 끝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또다른 얼굴을 발견한 탓에 부끄러워져 나는 잠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잠깐 부엌 쪽으로 가 멍하니 있거나 눈물을 훔치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나는 아이들 눈을 바라보고 거듭 사과한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어. 놀랐지.
엄마가 미안해. 




김나영 님의 말마따나 육아하는 엄마로서 나는 매일매일 내가 별로인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는다.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끝을 자꾸 보게 된다. 그 시간은 꽤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무엇보다 부끄럽다.


육아란 너무나 고되어서 한 사람의 밑바닥까지 간다. 3년 동안 육아휴직했던 남편은 초반 1년간 과호흡 증세로 고통받았고, 나는 힘들 때 종종 무호흡 증세로 숨을 참은 채 어떤 상태에 빠지는 때가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기본 동작인 숨 쉬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할 만큼 육아가 버겁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맞지!’ 이런 신세한탄을 하며 내 팔자는 인생의 총량을 채워간다. 내 인생 그동안 너무나 순했고 여리긴 했다. 나는 두 꾸러기를 낳음으로써 진정 어른으로 단련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둘인 우리 집에서 엄마는 오늘도 목소리만 커져 간다. 물론 꾸러기들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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